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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이별의 소야곡-박시춘 생가

경상도 밀양에는 박시춘 선생의 고향으로 생가가 보존되어 있습니다.

<박시춘 선생 생가 안내문>

생가로 올라가는 입구에 있는 안내문을 잠시 읽어봅니다.

이 생가는 한국 가요계의거목 박시춘선생의 업적을 알리기 위해 2001년에 복원을 하였는데친일인사에 포함되어 있어 2005년 부터 폐쇄를 시켰다가 다시 개방을 했다고 합니다.

<박시춘 선생 동상>

선생은 1930년대에 일제 강점기 서민의 애한을 그린'애수의 소야곡'을남인수씨가 불러 크게 히트하여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하였으며이 후 에 신라의 달밤, 고향초, 비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 전선야곡, 낭랑십팔세 등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을 만들었는데 약 3000여곡이 된다고 합니다.

<박시춘 노래비: 애수의 소야곡>

생가 한 편에는 애수의 소야곡이 그려져 있는 노래비가 서 있습니다.

위에 거론한 노래들은 나도 알고 있는 노래인데 그 중에 '애수의 소야곡'은 내가 어렸을 때 기타를 배우는 사람들이 필수적으로 연습하는 곡이기도 했습니다.

지금도 가끔 기타를 잡으면 전주곡을 튕겨보곤 하지요.




<박시춘 생가>

선생은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고 본명은'박순동'이라는데 선생의 활동에 비하면소박한 이름이지요?

아버지가 기생양성소인 권번을 운영하였기 때문에 어렸을 때 부터 노래를 접했다고 합니다.

일본 유학시절에는 중학생인데도 악단을 따라다니며 트럼핏, 색소폰, 기타 등을 배웠다고요.

3000여곡의 많은 노래를 작곡했는데일제강점기에는 혈서지원, 결사대의 안해 등일제 징병을 부추기는 친일노래도 제법 많이 만들었던 모양입니다.

1982년 대중가요 작곡자로는 처음 대한민국 정부로 부터 문화훈장을 서훈받았다고 하는데....

좀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그 때는 친일행위에 대해 아주 너그러웠던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시춘 생가>

위에 잠시 언급이 되었지만 이 생가는 선생이 친일인사로 되어 관람을 금지시켰다가 다시 개방을 했다고 했는데, 참 잘 한 처사라고 생각이 됩니다.

친일행위를 한 '과'도 있지만또한대중가요에'공'을 세운 것을 사실이니, 있는그대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정확히 기록하여 후세에 알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요.

비록 자그마한 집이지만 생가를 둘러보고 안내문을 보면서 잠시 '공인'의 처신에 대해 생각을 해봅니다.

강지니의 세상돌이, 대중가요 작곡가 박시춘 선생 생가를 둘러보았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