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 있는 처용암을 찾아갑니다.
처용암은 울산 황성동 세죽마을 바로 앞에 있는 섬입니다.
울산역에서 온산 방향으로 가다가 변전소 네거리에서 좌회전을 하고나서 교통표지판을 보면 "처용암 직진"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이 표지판을 계속 따라가면 조그만 만 한 가운데 바위섬이 눈에 들어옵니다.
교통표지판에 표시가 될 정도이니 꽤 괜찮은 그림을 머리에 그리며 갔는데 막상 와서 실물을 보니 기대와는 전혀 다른 조그만 바위섬입니다.
처용암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처용가의 주인공인 처용랑의 설화와 관계가 있는 바위라고 합니다.
바닷가에 서 있는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이곳에 와서 물가에서 놀다가 쉬고 있는데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끼어 길을 찾을 수 없게 되자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동해의 용이 조화를 부리는 것이니 좋은 일을 해주어 풀어야 된다고 하였답니다.
이에 임금이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세우라고 하자 구름과 안개가 걷혔다고 합니다.
이에 동해 용왕이 기뻐하여 일곱왕자를 거느리고 나와 춤을 추며 음악을 연주하였고 그 중의 한 아들인 처용이 임금을 따라 경주로 돌아왔답니다.
임금은 그에게 아름다운 여인을 아내로 맞게하고 급간이라는 벼슬을 내렸답니다.
어느날 처용은 아내가 역신과 동침하는 것을 보고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렀는데 이거이 바로 처용가라고 합니다.
<보물173호, 망해사지 석조부도>
그 용을 위해서 세운 절이 울주군 청량면에 터가 남아 있는 망해사이고 이 처용암이 있는 곳은 구름이 걷힌 포구라고 해서 개운포(開雲浦)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울산에 있는 문수산 초입에 '망해사'라는 최근에 지은 절이 있는데, 그 뒤쪽의 원래의 망해사가 있던 곳에는 보물173호로 지정된 오래된 석조부도 두 기가 옛 망해사의 흔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삼국유사기록을 찾아봅니다.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에서 다음과 같이 전한다.
第四十九憲康大王之代, 自京師至於海內, 比屋連墻無一草屋, 笙歌不絶道路, 風雨調於四時. 於是大王遊開雲浦. (在鶴城西南今蔚州.) 王將還駕, 晝歇於汀邊, 忽雲霧冥, 迷失道路. 怪問左右, 日官奏云, 此東海龍所變也, 宜行勝事以解之. 於是勅有司, 爲龍佛寺近境. 施令已出, 雲開霧散, 因名開雲浦. 東海龍喜, 乃率七子現於駕前, 讚德獻舞奏樂. 其一子隨駕入京, 輔佐王政, 名曰處容. 王以美女妻之. 欲留其意. 又賜級干職.
제49대 헌강대왕의 대에는, 서울에서 해내(海內)에 이르기까지, 가옥이 이어지고 담장이 연이어 있고 초가가 하나 없었으며, 길에는 노랫소리가 끊이지 아니하였으니, 풍우는 사철로 순조로웠다. 이 때에 대왕이 개운포(학성의 서남쪽에 있으며, 지금의 울주이다.)에서 노닐었다. 왕이 돌아가려고 낮에 물가에서 쉬고 있으니, 홀연히 구름과 안개로 어두워져 길을 잃었다. 괴이하여 좌우 신하들에게 물으니 일관(日官)이 아뢰기를, "이는 동해에 있는 용의 조화이니, 마땅히 승사(勝事)를 행하여 이를 풀어야 합니다."라 하였다. 이에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근처에 용을 위한 절을 짓게 하였다. 명이 내리자, 구름이 열리고 안개는 흩어졌으니, 개운포라는 이름은 이 때문이다. 동해용이 기뻐하여,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왕의 가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고 춤추며 노래하였다. 그 중 한 아들이 서울로 들어가, 왕의 정치를 보좌하니,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다. 왕이 미녀로 하여금 그를 처로 삼게 하고, 머물게 하기를 원하여, 급간(級干)의 직을 주었다.
강지니의 세상돌이, 울산의 처용암이었습니다.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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