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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글씨

바위글씨(16) 상공암-도봉산

도봉산의 원통사에 있는 바위글씨 “상공암(相公岩)”을 찾아가 봅니다.
원통사를 찾아 가는 길은 “바위글씨(15) 도봉산 문사동”이 있는 곳에서 다리를 건너 조금 더 올라가면 거북샘쪽과 우이암/오봉쪽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을 만나게 되고, 여기서 우이암/오봉쪽 길을 택하여 우이암을 거쳐 우이동 쪽으로 하산을 하다보며는 원통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보통은 우이동 그린파크에서 도봉산 방향을 길을 잡아 우이암쪽으로 가다가 원통사에서 잠시 쉬고는 보문산장을 거쳐 우이암에 도착을 하게 되고요.
<바위글씨 상공암>
원통사는 지형이 좁아서 그런지 입구에 있는 종루의 아래를 산문으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원통사라는 절의 이름에서 이 절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시고 있음을 추측하고요.
절문을 들어서면 앞에는 요사체로 보이는 당우가 있고 오른쪽으로는 조금 길게 보이는 관음보전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관세음보살을 모신 당우를 원통보전이라고 하는데 절의 이름이 원통전이라서 그런지 당우를 관음보전이라고 한 것 같습니다.
요사체와 관음보전의 사이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가면 좌측으로는 동굴속에 자리를 하고 있는 나한전이 있고 우측에는 약사전이 바위위에 살포시 자리를 하고 있는데 그 바위위에는 큼직하게 상공암(相公岩)이라는 바위글씨 세 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원통암의 안내문을 읽어보며는 <원통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하고……경내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가 기도했던 석굴이 있으며, 약사전 아래 거북바위에는 태조가 기도를 마치던 날 천상의 상공(정승)이 디어 옥황상제를 배알하는 꿈을 꾸었다하여 새겼다는 ‘상공암’이라는 글씨가 있다.>라는 내용이 있습니다.
<바위글씨 상공암>
저 글을 읽다보니 무언가 개운치 못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이야 도봉산이 우리 곁에 있어 많은 사람들이 즐겨찾는 곳이지만 태조 이성계가 살아 있었을 때야 개성에서 한 참 떨어진 곳이고 태조는 이 쪽보다는 저 북쪽에서 주로 생활을 하던 사람인데 이 곳까지 와서 기도를 할 여유가 있어나 모르겠습니다.
정권을 잡고 왕이 된 후에는 더욱 그런 여유가 없었을 터이고, 함흥에 칩거하다가 의정부에서 방원이와 기 겨루기를 할 때에 관련된 사찰은 사패산 밑에 있는 회룡사로 알려져 있고요.
상공(相公)은 재상을 높여서 부르는 말로 영의정, 요즘의 국무총리 정도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하는데 일국의 왕이 된 사람이 아무리 하늘 나라라고 하지만 옥황상제의 재상이 되는 꿈을 꾸었다고 감격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그 꿈 얘기를 자랑으로 얘기할 태조 이성계는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글씨를 자세히 봅니다.
누가 새겼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고 하는데 힘이 넘쳐납니다.
아마도 힘께나 있는 어느 재상이 전망 좋은 이 곳 절에 왔다가 후하게 시주를 하고, 그 답례로 절에서 한 글씨 써 놓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 도선국사는 참 대단한 분이십니다.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니다 보면 많은 절들이 도선국사가 창건을 했다고 하는데,,,,,,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면 될 텐데 이 것도 병인가 봅니다.
<원통사 나한전-석굴>
좌측으로 난 계단을 올라가면 바위머리에 나한전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전각은 보이지 않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바위아래에, 위 그림의 우측 하단에 조그만 석굴입구가 보입니다.
그 안에 크지 않은 주불과 협시보살이 모셔있고 그 앞에 촛불을 켜 놓았는 참 아늑해 보입니다.
아마도 이 곳이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드렸다는 석굴이겠지요.
절을 나서며 주변을 둘러보니 뒷 쪽으로는 우이암과 여러 형상의 바위를 배경으로 하고 앞쪽은 탁 트여 전망이 아주 좋은 곳으로 풍수를 떠나 참 좋은 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우이동으로 하산을 합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