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IC에서 618번 지방도로덕산으로 오다 보면 시원한 풍광을 지닌 고풍저수지를 만납니다.
이 저수지와 붙어 있는 고풍터널을 지나면 우측으로 좁은 길이 나타나는데 오늘의 세상돌이 주인공인 서산마애불로 들어가는 용현계곡 길입니다.
이 용현계곡은 한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많이 붐비는 곳이고 조금 더 따라 올라가면 이 지역 최대의 사찰이었던 보원사지가 있는 곳입니다.
좁을 길을 따라 얼마를 가니마애삼존불의 안내판이 나오고 그 옆에는 음식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삼불교>
유홍준 교수의 답사기에 보면 이 부근에 있는 보원사지에는 많은 문화재들이 남아있어 오래 전부터 알려지고 관리되었지만, 이 마애삼존불에 대해서는 몇몇 지역민들만 알고 있었지 학계나 당국에는 알려지지 않았었다네요.
그러다 1959년쯤 부여박물관장이 보원사지 유물조사를 하다가 이 불상을 확인하고 당국에 보고하여, 현장조사 등 절차를 거친후 국보로 지정되었답니다.
<관리사무소>
그 박물관장(홍사준)은 이 보원사지에 올 때 마다 마을 사람들에게 인근 산에 불상이나 석탑이 무너진 것을 본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는데, 어느 날 만난 나이 많은 나무꾼이 대충 아래와 같이 말했답니다.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 보았지만, 환하게 웃고 있는 산신령이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마누라와 같이새겨진 바위가있는데, 작은마누라가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웃으면서본마누라를 놀리니까, 본마누라가 장돌을 쥐고 집어던질 채비를 하고 있는 모양이다.”
백제의 불상에 대해서는 뚜렷한 물증이 없이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금동반가상이나 일본 광륭사의목조반가사유상, 법륭사의 백제관음상 등이 백제의 불상일 거라고 심증만 있었는데, 이 마애삼존불로 이런 추측이 확실한 물증으로 전환시키는 아주 중요한 발견이었답니다.
<불이문>
관리사무소의 마애불에 대한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를 들고 있는 입상보살과 함께 반가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라네요.
이 곳은 지리적으로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으로, 6세기 당시에는 불교문화가 크게 융성했던 곳이였다고요.
백제의 불상은 귀족성향의 불상과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뉘는데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가 이 마애불이라고 되어 있는데, 귀족성향은 중앙박물관에 있는 반가사유상을 지칭하는 듯 합니다.
<마애삼존불 옆 축대>
불이문을 지나 돌아가면 건너편으로 보이는 저 축대 위 바위 우측면에 삼존불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곳에 사각형의 구멍들이 보이는데 불상 옆에 무슨 인공 구조물을 지었던 자욱으로 보이네요.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
바로 국보 제 84호 서산마애삼존불입니다.
중앙에는 석가여래입상이 자리하고 양옆에 자리하고 있는 협시불 중 우측에 손에 보주를 들고 서있는 보살은 ‘제화갈라보살입상’이라고 하며 좌측에 반가자세로 앉아 있는 보살이 미륵반가사유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네요.
주불인석가여래나 우측의 제화갈라보살은 서 있는데, 오직미륵보살은 저렇게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거기에다 손가락에 볼을 대고 고개까지 약간 여래쪽으로 기울이며애교부리는 형태이니 나무꾼 아저씨가 작은마누라라고 생각했을 법도 하네요.
유교수의 답사기에 보면 이 도상의 우측에 서 있는 보살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나뉘어 져 있다고 합니다.
반가상은 미륵보살로 이의가 없는데 우측 보살입상은 법화경에 나오는 ‘수기삼존상’으로 보아 ‘제화갈라보살’로 보는 견해와, 다른 나라의 봉주보살 예를 검증하면서 관음보살로 보는 견해가 있다고요.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
이렇게 그림으로 보고만 있어도참 편안한 느낌입니다.
박물관장이 만난 나무꾼이한 말을 되집어 봅니다.
가운데에는 산신령이환하게 큰웃음을 짖고 있고, 그 왼쪽에는 작은 마누라가 손가락으로 볼을 찌르면서 "용용 죽겠지?"하며 큰마누라를 놀리고 있으며, 우측에 서있는 큰 마누라는 약이올라 짱돌을 들어 작은마누라에게 던지려고......
<백제의 미소: 석가여래상의 미소>
삼존불 앞에 서있는 안내문을 살펴봅니다.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석가여래입상,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제화갈라보살입상, 천진난만한 미소를 품은 미륵반가사유상은 백제 특유의 자비로움과 여유를 느끼게 해준답니다.
이 불상들의 미소는 시간에 따른 빛의 방향에 따라 아침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를 볼 수 도 있답니다.
저 웃고 있는 모습의 느낌이 어떠신지요?
유교수는 답사기에서 바로 이 웃음을 삼불 김완용 선생이 “백제의 미소”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안타까워 하는 것이걸작품에 대해서는인문적, 미학적, 역사적 가치가 고양되건만 이 삼존불에 대하여예찬한 수필이나 시 한편도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다만 학자인 황수영교수와 이기백교수가쓴 아주 짧은 명품해설과 수필 단 두편만 있었다네요.
즉 푸대접을 받았다는 얘기가 되나요?
<백제의 미소: 제화갈라보살 입상의 미소>
이 삼존불은 토함산의 석굴암과 같이 동짓날에는 해 뜨는 방향을 향하고 있어 일조량을 가장 많이 받을 수있고, 앞에는 산자락이 있어 정면으로 바람이 때리는 것을 막아주며, 위로는 앞으로 튀어나온 바위와 더불어 삼존불이 있는 바위가 앞으로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가 직접 들이치는 것을막아주고 있다고 합니다.
작은마누라에게 던질 짱돌을 아주 소중하게 보듬고 있습니다.
내 눈에는 약이 올라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마누라를 구박하려는 본마누라의 심술이 배어 있는 웃음으로 보이내요.
저 위에 봉주보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아마도 두손으로 구슬을 보듬고 있는 보살이라는 뜻인가 봅니다.
이 삼존불을 보러 두번을 왔었습니다.
한 번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고 두 번째는 맑은 날이었습니다.
석조물의 사진을 담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겠지만 맑은 날 담은 것은 사진으로 윤곽을 알기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이 사진들은 첫 번 방문 때 젖어 있는 삼존불을 담아그나마 Detail한 부분도 볼 수 가 있습니다.
<백제의 미소:미륵반가사유상의 미소>
작은마누라의 용용 죽겠지 하면서 볼을 찌르고 있던 오른 팔과 왼 팔이 손상이 되어있네요.
약을 올리는 웃음보다는 구박을 받는 작은마누라로 보이고요.
심술궂은큰마누라가 던진 돌에 맞아 떨어져 나간 모양입니다.
유교수의 답사기를 보면 이 마애삼존불은 1965년에 지어진 보호각 안에 갇혀 있었던 모양입니다.
답사기를 쓸 때가지도 갇혀 있었을 텐데 얼마나 답답했을까……
경주에 있는 배리삼존불도 보호각에 갇혀 있는데다행히도2008년까지 보호각 철거공사를 한다고 안내판이 붙어 있었습니다 만어떻게 되었는지?
지금은 보호각에서 해방되어 이렇게 시원한 햇볕과 바람 그리고이렇게 부슬비를 맞을 수 있으니마애 삼존 부처님들도 많이 행복해 할 것 같습니다.
참 보기 좋은 우리의 보물입니다.
한발물러 세상보기,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을 둘러보았습니다.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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