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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공사중에 발견된 국보 제119호- 년가칠년명금동불입상

경남 의령군 대의면 하촌리라는 부락에 나이 많으신 시어머니와 다섯남매를 거느리고가정을 꾸려가던 40대 초반의 아주머니 한분이계셨답니다.

1962년 어느날아주머니는 큰아들과 같이 부근의 야산 비탈에 있는 도로 공사장으로 막일을 나갔다네요.

요즘에야 도로공사를 하더라도 모두 장비가 하고 인력으로 하는 일이 별로 없지만 당시만 해도 모두 인력으로 했다지요.

<국보 제119호 년가칠년명 금동불 입상>

아주머니와 아들이 괭이질을 하며 돌을 헤치다가 넓적한 돌을 하나 젖혔는데, 놀랍게도 그 아래 조그만 석실에 금빛이 찬란하게 빛나는 작은 부처님이 반듯이 눕혀져 있었다는데...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부처님은 16Cm정도의 완전한 형태의 금동여래입상이었고등뒤에는 광배가붙여있는데뒷면에는많은 글자가 새겨져있었답니다.

<국보 제119호 년가칠년명 금동불 입상>

부처님을 발견한 모자는 행여 누가 볼까나 조심해서소중하게 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이것도 사람의 일인지라 며칠이 지나지 않아소문이 나서마을사람들은 다 알겠되었다네요.

동네 어른들이 아주머니에게 경찰서에 가서 발견된 경위를 신고하고 부처님도 돌려주라고 권했고, 착한 아주머니는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대의면 지서에 신고를 했답니다.

<국보 제119호 년가칠년명 금동불 입상>

지서에 신고된 부처님은 곧장 경남도를 거쳐 문교부에 보고가 되었으며 전문가들이 수차례의 현지 조사와 함께 불상에 대한 평가를 하였답니다.

그 결과는 이 금동불상은 남한지역에서 유일하게 출토된 고구려 시대의 불상으로 밝혀졌고요.

이 불상은 전체적으로 뛰어난 조각미와 균형을 가졌으며 특히 광배 뒷면에 4행 47자의 아주 귀중한 명문을 지닌 국내 최대의 국보급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출토된 그곳은 불상이 있을 만한 절터도 아니고 불교 유적지도 아니어서 지금까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하는데 뭐 수수께끼는 좀......

누군가 불상을 소유하고 있다가 무슨일이 생기자 여기다 숨겨두고는 어찌 어찌하다 그만 되찾을 입장이 되지 못했겠지요.

부처님이 뉘여 있던 곳은폭 30, 깊이 30, 길이 40Cm의 정성스럽게 만든 조그만 석실이었다는데이렇게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부처님을 모신다음 큰 돌로 덮어 놓은 것을 보면임시로 숨겨둔 것이 아닌가 하네요.

<국보 제119호 년가칠년명 금동불 입상 광배의 명문>

그 후 불상은 국보 제119호로 지정되어 국립박물관에 보관이 되었고, 지금은 용산의 국립중앙박물관의 3층 불교조각관에 전시되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조명의 방향 때문인지 사진을 담아도 부처님 얼굴의 잘 보이지 않아 좀 아쉽구요.

박물관의 안내문을 옮겨봅니다.

제작연대가 새겨진 불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불상이라고 되어 있으며, 광배 뒷면에 있는 글자에 의하면 서기539년 고구려 평양에 있는 동사라는 절에서 만들어 유포한 천불 가운데의 하나라고 합니다. 천불은 과거, 현재, 미래에 존재하는 부처님을 말하며 어느때나 무한한 부처가 존재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랍니다.

아! 참, 그리고 그 뒤 이야기는......

그 뒤 1년 동안의 법적 공시기간을 거쳐서 1964년 10월에 이 불상을 발견하여 신고한 착한 아주머니께는 서울까지 초대를 받아 올라오셔서 문교부장관이 수여하는 보상금 20만원을 받았다고 합니다.

당시에 20만원이면 엄청난 금액이라고 하는데... 우리 착한 아주머니 화이팅이지요?

아울러 불상이 출토된 땅의 주인에게도 20만원의 보상금이 주어 졌다고요.

그 뒤로 매장문화재가 여러곳에서 발굴되어 보상금을 많이 받기도 했다는데 기회가 있으면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한발물러 세상보기,

국립중앙박물관의 3충 불교조각실에 전시되어있는 국보 제119호 년가칠년명 금동불 입상, 이 부처님의 발견 내력을 알아보았습니다.Kangjinee...^8^

<위의 얘기는 이구열 저 "한국 문화재 수난사"에서내용을 빌려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