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글씨, 12번째로 도봉산 입구의 계곡에 있는 烟霞籠處洞門開(연하롱처동문개)로 시작하는 칠언절구의 바위글씨를 살펴봅니다.
바위글씨(11)에서 살펴보았던 제일동천(第一洞天)이 있는 바위의 남쪽면에는 조금 작은 크기의 바위글씨가 새겨져 있습니다.
가로 105Cm, 세로 84Cm크기의 바위 면을 다듬고 한 줄에 5자씩 5줄, 그리고 맨 마지막 줄에는 석자를 세로로 새겨 놓았고, 그 왼쪽으로는 글을 쓴 날짜와 글쓴이의 필명으로 보이는 글씨가 더 작은 크기로 새겨져 있고요.
<바위글씨 연하롱처동문개>
이 바위글씨를 자세히 살펴봅니다.
烟霞籠處洞(연하롱처동)
門開地向雲(문개지향운)
山物外闢萬(산물외벽만)
丈峰高丹窟(장봉고단굴)
深化翁慳秘(심화옹간비)
巖泉石(엄천석)
丁丑九月道峰樵 樵叟(정축구월도봉초수)
고생 고생하며 이쪽 계곡으로 와서 바위글씨를 찾아 사진을 담았는데, 집에 와서 컴퓨터로 옮기다가 모두 날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다음 날 다시 찾아가 사진을 다시 담았는데, 그 때 자세히 보니 이 바위글씨는 다섯 글자씩 세로로 새겨져 있어 오언절구로 생각을 했었습니다.
<바위글씨 연하롱처동문개>
그런데 사진을 보면서 이런 저런 자료를 찾아보니 칠언절구로 정리가 되었네요.
그렇게 정리를 해놓으니까 아하 그렇구나 하였지만 그것이 없었다면 아직도, 아니 죽을 때 까지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오언절구로 알았을 것 같습니다.
정리해 놓은 것을 살펴봅니다.
烟霞籠處洞門開(연하롱처동문개)
地向雲山物外闢(지향운산물외벽)
萬丈峰高丹窟深(만장봉고단굴심)
化翁慳秘巖泉石(화옹간비엄천석)
丁丑九月道峰樵 樵叟(정축구월도봉초수)
이렇게 해놓고 보니 무식한 내 눈에도 뭔가 틀이 잡히는 모양입니다.
마지막 줄에만 세글자이던 것도 이해가 가고요.
<바위글씨 연하롱처동문개>
역사박물관의 "바위글씨전"에 수록되어 있는 번역문을 살펴봅니다.
<연하가 자욱한 곳에 동문이 열리고
그 곳이 구름 낀 산을 향하니 물외에 있네
만장봉은 높게 솟아있고 연단굴은 깊으니
조화옹이 이 좋은 천석을 아껴서 감추었네>
이와는 조금 다른 표현인 도봉문화원의 자료인 “도봉금석문”에 있는 번역문을 살펴봅니다.
<연기와 노을이 아득한 곳에 동구가 열렸는데
땅은 깊은 구름산을 향하여 속세를 떠난 경지를 이뤘고
만장봉 높은 곳에 신선의 굴이 깊으니
조화옹(하늘)이 이곳을 비밀을 숨겨 두었던 아름다운 바위와 맑은 생물과 기이한 돌일세>
그리고 이 글을 쓴 <정축년 구월 도봉산 나무꾼>을 인조 때 인물인 '촌은 유화경'으로 추정을 하고 있는데 추정 근거는 제시를 하지 않았네요.
<바위글씨 연하롱처동문개의 위치>
그런데 이 칠언절구에 나오는 사람들이 사는 속세가 아닌 “물외”와 불노불사의 단약을 만드는 “단굴”, 같은 바위 동쪽 면에 새겨진 바위글씨 ‘동중즉선경 동구시도원’에 있는 신선이 사는 동네라는 ‘선경’과 무릉도원을 뜻하는 ‘도원’, 그리고 개울 건너 맞은 편에 있는 ‘연단굴’과 바위글씨 “연단굴”이 어떤 끈으로 이어져 맥이 통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이런 저런 추측을 해보지만 분명한 것은 도봉산 입구의 계곡에서 바라보는 도봉산은 신선이 살아 있다고 느낄 만큼 절경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산을 찾는 산객들의 건강과 행락객들의 도우미 역할에 속살을 다 내보이고 있고, 주변에는 온갖 유흥음식점에 흉물스런 시멘트 수영장까지 방치되어 있지만……
나도 신선이 살던 그곳을 훼손하는 산객중의 한명이지만, 이산을 더욱 사랑하고 더 많이 아껴주기로 다짐을 해봅니다.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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