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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어농성지(070224)-이천

2007년 2월 24일, 집사람과 언젠가 어농성지를 다녀와서는 꼭 한번 같이 가야한다고 몇 번 얘기했던 어농성지를 사순시기를 맞아 집사람과 같이 찾아갑니다.

<어농성지 입구>
이천 톨게이트를 내려 안내표를 따라 20여분을 가니 어농성지가 나옵니다.
여느 농촌마을의 한 쪽에 자리한 어농성지는 특별히 치장해 놓은 것이 없어 주변 마을과 잘 동화되어 있었습니다.
어농성지는 주문모(야고보) 신부를 영입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1795년 을묘박해 때 순교한 최초의 밀사인 윤유일(바오르), 동료 밀사 지황(사바), 최인길(마티아), 그리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주문모 신부와 윤유일의 아우 윤유오(야고보), 사촌 여동생인 동정순교자 윤점해(아가다), 윤윤혜(루치아), 정광수(바르나바)부부 순교자 그리고 이들과 함께 주문모 신부를 도왔던 최초의 여회장 강완숙(골롬바)를 현양하기 위해 조성한 성지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길>
고속도로가 밀려 좀 늦게 도착했더니 벌써 미사가 끝났는지 한 무리의 순례객들이 신부님의 안내를 받아 순교자 묘소로 향하고 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섭섭함을 여미고 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집사랍과 같이 십자가의 길을 따라 기도를 올립니다.
여기에 현양된 아홉분의 순교자는 현재 그 성덕을 높이 인정받아 '하느님의 종'으로 선정되었고, 교황청 시성성의 인준에 따라 시복 시성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고 하는데 이 분들도 곧 성인으로 시성되기를 염원합니다.

<순교 200주년 현양기념비>
순교자 묘소로 올라가는 길 옆에 순교자 윤유일(바오르)의 순교 200주년 현양순교비가 눈에 들어옵니다.


<성모상>
순교자 묘소 입구에 있는 성모상입니다.
이 어농성지에는 위에 말한 순교자들 외에도 신유박해 때 순교한 조용삼(베드로), 최창주(마르첼리노), 이중배(마르띠노), 원경도(요한), 심아기(바르바라), 한덕운(토마스) 그리고 강완숙의 아들 홍필주(필립보) 등 8위의 시복 시성을 위해서도 기도운동을 전개하고 있다고 합니다.

<윤유일 순교자 동상>
묘소 앞에는 순교자 윤유일의 동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카메라에 담아 보았지만 역광이라서......
윤유일 바오르는 여주에서 태어나 권철신에게 글을 배우고 권일신과 정양종에게 교리를 배워 천주교에 입교를 하였답니다.
1789년 10월 사신행차를 따라 북경에 가서 구베아주교에게 신부 한분을 보내줄 것을 간청하고 거기서 머무는 동안 록스(Raux)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견진 성사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그후 1790년 다시 북경으로 건너가 1791년 레메디오스 신부를 모셔오려 했으나 실패하고, 다시 수차례 시도하여 1794년 12월 23일 최인길(마티아), 지황(삽바) 등과 함께 주문모 신부를 모시고 압록강을 건너 입국하는데 성공하였으나 1795년 5월 진사 한영익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고를 치루다 1795년 6월 28일 포도청에서 36세를 일기로 난징타살 장렬하게 순교를 하였고 시신은 한강에 던져졌다고 합니다.


<주문모 신부 동상>
주문모 신부는 중국 태생으로 북경교구 신학교 제 1회로 졸업한 사제로 1794년 2월 조선파견 선교사로 임명되어 윤유일, 최인길, 지황의 안내로 입국하였으며 경성 계동 최인길의 집에서 성사집행을 위한 우리말을 배웠고 1795년 4월 4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성세성사를 주고, 4월 5일 조선 최초로 부활축일 미사를 봉헌하였으며 그 후 양근, 전주, 고산, 홍산, 내포 드에서 6년동안 윤유일, 최인길, 지황, 강원숙의 집으로 전전하면서 전교하다가, 1801년 2월 20일 은언군의 부인 송마리아의 폐궁으로 피신하였으나 교우들의 희생이 너무 큰 것을 염려하여 1801년 3월 12일 의금부에 자수, 그해 5월 31일 새남터에서 50세를 일기로 참수, 순교하셨다고 합니다.

<순교자의 묘>
이 곳 순교자의 묘는 야외제대가 있는 있는 곳을 가운데로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신부님의 말씀에 따르면 여기에 있는 순교자들의 묘에는 시신이 없는 가묘라고 합니다.
새남터에서 순교를 당하고 한강물에 시신이 버려졌기 때문에 시신을 수습하지 못하여 이렇게 묘만 조성을 해 놓았다고요.
<순교자 묘소>
건너편에 있는 순교자 묘소입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윤유일의 집안인 파평윤씨의 선산자리인지 많은 파평윤씨들의 묘가 있고 그 중에 윤유일 순교자를 비롯한 몇 분의 순교자들의 묘가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순교자들의 묘는 시신이 없는 가묘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상>
순교자의 묘 한가운데 에는 예수님의 상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어농성지는 1987년 고 김남수(안젤로) 주교님에 의해 축복된 성지라고 합니다. 또 이곳에서는 1996년 부터 지금까지 순교 선조들의 시복 시성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 오고 있으며, 2002년 8월, 수원 교구장 최덕기(바오로) 주교님에 의해 "울묘, 신유박해 때 순교하진 선조들을 기리고 현양하기 위한 기념 성지"로 선포되었다고 합니다.
<어농성지 성당>
성지를 한 바퀴 돌고 나니 집사람이 여기를 다녀와서 같이 한 번 가봐야 한다고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언제가 어느 성지를 다녀와서 안식구에게 순교의 정신을 기리는 것은 좋지만 너무 성지를 인공적으로 조성한 것 같다고 한 적이 있는데, 이 어농성지는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어 안내문이나 순교자 동상, 성당이 없으면 성지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집사람이 같이 한번 가봐야 한다고 몇 번 말을 했던 것 같습니다.
순교자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도 주변이 참 편하게 눈에 들어오는 어농성지를 뒤로 하고 차에 오릅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