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2월 11일, 경주 남산으로 문화재를 만나러 떠납니다.
<서출지>
<남산 굴바위>
<동쪽 들판>
<오층석탑>
<삼화령 대연화대>
<삼화령 차밭 안내문>
점심 식사를 하면서 경주 남산의 문화재 얘기를 했더니 옆에서 같이 식사하던 분이 같이 가자고 하여, 식사를 마치고 같이 남산으로 향합니다.
오늘은 통일전에서 고위산쪽으로 방향을 잡아 칠불암 마애불상군을 돌아 보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서출지>
통일전 주차장에 차를 주차시키고 등산안내도를 확인한 다음 서출지의 뚝방길을 따라 칠불암으로 가는 길을 찾아갑니다.
길을 따라 가다보니 건기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통제를 하는 곳이 나와 인적사항을 기입하고 산으로 오릅니다.
<남산 굴바위>
산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니 산길에 굴바위가 나옵니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별다른 것이 없는 조그만 석굴인데 누군가가 기거한 흔적이 있습니다.
지도를 보니 칠불암으로 가는 길이 아니고 팔각정터로 오르는 길이네요.
하산을 하면서 그쪽으로 방향을 잡기로 하고 길을 따라 팔각정터로 오릅니다.
<동쪽 들판>
팔각정 터에 올라 올라온 쪽을 바라보니 동쪽으로 넓은 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그 너머로는 토함산으로 보이는 산들이 길게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층석탑>
북쪽에 자리를 하고 있는 금오정 너머로 조그맣게 횐탑이 보여 줌으로 쭈욱 땡겨봅니다.
오층석탑인데 다음에는 이 쪽으로 답사를 해봐야겠습니다.
<금오산 정산>
금오산 정상에 올라 잠시 쉬면서 정상 표석을 둘러봅니다.
어느산이나 표석이 카메라에 잡히는데 오늘은 뒤면을 담아봅니다.
-금오산을 노래함-
높고도 신령스런 금오산이여!
천ㄴ녀왕도 웅혼한 광채 품고 있구나.
주인 기다리며 보낸세월 다시 천년 되었으니
오늘 누가 있어 능히 이 기운 받을련가?
<삼화령 대연화대>
금오봉에서 내려와 용장릉계곡과 가라져 삼화령으로 내려옵니다.
삼화령은 '삼화수리'라고도 하는데 수리(頂)는 높은 곳을 의미하고, 세곳 수리는 금오봉과 고위봉, 그리고 이 곳 봉우리를 합하여 삼화령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경주 박물관에 있는 애기부처, 삼화령애기부처가 있던 자리도 이 부근인가 봅니다.
선덕여왕시절 생의 스님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 '나를 따라 오라'하며 남산 남쪽 골짜기에 데리고 가 풀을 묶어 놓으며 '내가 이곳에 묻혀 있으니 스님은 나를 파내어 시원한 곳에 있게 해 주시오'라고 했고, 다음 날 그곳에 가보았더니 꿈속처럼 풀을 묶어 놓은 곳이 있었다고 합니다. 생의 스님은 땅 속을 파 돌미륵불을 얻어 삼화령 꼭대기에 모셔놓고 그 자리에 절을 지어 공양을 하였다고 합니다.
충담스님이 해마다 삼월 삼일, 구월 구일에 남산 삼화령 미륵불 세존께 차를 공양했다는 "삼국유사"의 기록이 있는 데 바로 그 부처님으로 짐작되는데 그 미륵불은 없어지고 다만 위의 사진에 있는 연화대좌만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안내문을 보고 가파른 비탈을 기어올라 연화대좌를 담아옵니다.
<삼화령 차밭 안내문>
대 연화대를 떠나 조금 내려오니 조그만 안내문이 나옵니다.
이 지역은 서라벌 삼월삼짓날 층담스님이 차를 다려 남산 삼화령 부처님께 차를 올린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차나무를 심었다는 '삼화령 남정다회'라는 단체의 안내문입니다.
하산길에 칠물암 마애석불로 넘어가는 길을 만납니다.
그족으로 방향을 트니 같이 동행한 분이 힘이 많이 든다며 그냥 내려가자고 하네요.
마음은 내키지 않았지만 어쩌다 산에 올라온 그 분을 생각하여 마애불상군은 다음 기회에 만나기로 하고 통일전 쪽으로 하산을 합니다.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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