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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글씨

바위글씨(5) 고산앙지(高山仰止)-도봉산

도봉산입구에 있는 도봉서원 앞 길가에는 안내판 두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 개울가에 있었다는 침류대의 안내문을 석판에 새겨놓았고 또 하나는 '고산앙지'라는 바위글씨(암각문)에 대한 안내판입니다.
<고산앙지>
길가에서 보이는 바위글씨 고산앙지의 모습입니다.
안내판의 내용을 읽어봅니다.
제목은 <도봉산의 석각 高山仰止>라고 되어 있고
"계곡 건너로 보이는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1700년(숙종26년:경진) 7월에 김수항이 새긴 것인데, 고산앙지란 말은 시경(詩經)의 소아보전 편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김수항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으로 새긴 것으로 짐작됩니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한게 있지요? 김수항의 생몰연대가 인조7년~숙종15년(1629~1689)으로 되어 있는데 경진년(1700)에 글을 썼다는 것이...
<고산앙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서서 본 바위글씨 "고산앙지"입니다.
도봉문화원에서 발간한 '도봉금석문'에 나오는 고산앙지의 안내에는 김수항(1629~1689)의 친필로 1651년(경진, 효종2) 7월, 22세 때 새긴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뜻 풀이는 '여기 머물며 높은 산(도봉산)을 우러러 본다'라고 되어 있고요.
그런데 경진년이면 1651년이 아니고 1700년이 되겠지요.
<고산앙지>
물가에서 카메라의 LCD Monitor에 꽉 차게 담아본 고산앙지입니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지구 사무실에서 조사해놓은 석각문의 자료를 보니
"글씨가 새겨져 있는 바위가 물속에 잠겨있음. '여기 머물며 높은 산을 우러러 본다'라는 뜻이지만, 김수항이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으로 새긴것으로 짐작"이라고 설명을 해놓았습니다.
<고산앙지의 물속글씨>
물속에 잠겨있는 부분을 담아봅니다.
몇 글자는 물속 모래속에 묻혀있네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편찬한 '바위글씨전'의 책자를 찾아봅니다.
고산앙지는 1700년(숙종26년) 7월에 곡운 김수증(1624~1701)이 쓴 글이다. 계곡바닥에 위치하여 자획의 가장자리가 많이 이지러졌지만 전체의 윤곽은 뚜렷하며, 팔분체 특유의 투박한 획과 여유있는 필치는 고졸(古拙)하고 중후한 품격을 느끼게 한다.
고산앙지란 말은 시경 소아 차할편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뜻이다. 김수증이 이 글씨를 이곳에 남긴 구체적인 동기에 대하여는 확인할 길이 없으나,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로 새긴것으로 추측된다."
그리고 크기는 250x95Cm이고 楷書體의 글씨라고 되어 있습니다.
에궁~여기에는 김수항이 아니라 김수증이 새긴 바위글씨로 되어 있네요.
위에 있는 물속 글씨 사진에서도 이름부분의 글씨가 물에 잠겨있어 모래를 파보기 전에는 확인이 어렵지만 사진속에 보이는 글자의 획을 보고 유추를 해봅니다.
<고산앙지-물속 이름부분>
물속에 잠긴 부분을 확대하여 모래속에 묻힌 부분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김수x"이란 이름중에서 x부분을 항(恒)과 증(增)과 비교를 해보니 우하측으로 삐쳐내린 획을 보니 恒보다는 增이 더 가까운 것으로 심증이 가네요.
더구나 생몰년대도 그렇고, 김수증이 확실한것으로 보입니다.


<고산앙지 안내문>
도봉산입구의 개울가에 세워진 고산앙지 안내문입니다.
북한산국립공원관리공단의 도봉지구관리소에서 모래 속에 묻힌 이름을 확인하고 위에 있는 안내판을 바꿨으면 합니다.
아니, 위 안내문에 있는 경진년(1700)과 김수항의 생몰년대가 일단은 맞지 않으니 이 안내문은 어찌하였던 수정이 되어야 할 것 같구요.
<눈에 덮힌 고산앙지>
눈에 덮혀있는 고산앙지의 모습입니다.
모래를 조금만 파보면 이 바위글씨를 쓴 사람이 김수증이라고 알 수 있을 텐데 왜 도봉문화원이나 국립공원 직원들은 발간자료나 심지어는 그 옆에 세워둔 안내판에도 김수항의 글씨라고 기록을 해놓았는지 궁금합니다.
곡운 김수증(인조2년1624~숙종27년1701)은 굳은 절개로 유명한 김상헌의 손자로 김수항의 형이랍니다.
당쟁의 한가운데서 파란만장한 관직생활을 하다가 사사를 당한 동생과는 달리 공은 동생이 송시열과 같이 유배를 가자 당쟁에 회의를 느껴 벼슬을 버리고 계속되는 조정의 부름을 피해 화악산 등에서 정사를 짓고 은둔하였던 유학자라네요.
1700년 경진년에 쓴 글씨라니 공이 타계하기 바로 전해에 새긴모양이고요.
<눈에 덮힌 고산앙지>
그런데 또 다른 곳을 찾아봅니다.
'세계속의 한국예절'이라는 책의 도봉서원 편에 보니 도봉산의 바위글씨를 소개하면서
"~또한 숙종 26년 경진(1700) 7월에 김수항 공의 글씨를 새긴 고산앙지(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는 시경의 글)와 우암 선생~"라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처음 누군가가 한번 잘못 기록한 것을 본 사람이 실제 물속 모래속에 잠겨있는 글씨는 확인하지 않고 확인한 것처럼 다른 곳에 쓰다보니 이런 오류가 생긴것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 세간에는 황우석박사의 논문조작으로 시끌벅쩍한데 황박사가 휘하 연구원들의 보고만을 듣고 믿을것이 아니고 꼼꼼하게 확인을 했더라면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는데, 이 경우에 틀렸다고 해도 크게 문제는 없겠지만 같은 경우로 보입니다.
잠시 군소리를 해보면, 일반 기업체의 경영시스템에는 PDCA 사이클이라는 가장 기본적인 용어가 있는데 이는 Plan(계획)-Do(실행)-Check(확인점검)-Action(후속조치)을 하고 다시 계획을 세우고~.
어떤 일이던지 자기의 위치에 적절한 Check Point를 설정하여 PDCA사이클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고산앙지>
관련문구를 찾아봅니다.
高山仰止(고산앙지) 景行行止(경행행지)
"학문이 높은 분(높은 산)은 우러러 보아야 하고, 훌륭한 행동은(큰길은) 따라가야한다." 아주 좋은 얘기입니다.
도봉산입구에 있는 바위글씨, 고산앙지를 살펴보았습니다.
<바위글씨 고산앙지의 위치>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