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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041127 경복궁(2/6) - 치조 공간 ---경복궁(1/6)에서 계속--- 외조에서 지금부터는 치조로 들어갑니다. 치조는 근정전, 사정전, 경회루, 자선당 등이 속하는 곳으로 왕이 공식적인 업무를 보는 통치공간이라구요. 근정전의 남쪽 행각의 중앙에 있는 근정전의 남문으로 다락문 형식의 2층문입니다. 근정문의 답도에도 서수 두마리가 업드려 있고 가운데 에는 봉황이 조각되어 있구요. 국보 제 223호인 근정전은 조선건축의 최고 최대의 건물로 경복궁의 전전으로 이곳에서 문무백관이 임금에게 하례와 조례를 올리었으며 국가의식을 거행했던 곳으로 정종, 세종, 단종, 세조, 성종, 중종, 명종 등 여러 임금이 여기에서 즉위식을 했다네요. '근정전'은 '아침에 정사를 보고 낮에 의견을 물으며 저녁에 정령을 닦고 밤에 몸을 편안히 한다.'는 시경의 문구를 이.. 더보기
041127 경복궁(1/6) - 외조 공간 2004년 11월 27일 경복궁을 둘러보러 갑니다. 지하철에서 국립중앙박물관이 있는 쪽의 출구로 나오는 통로에는 여기에 있던 박물관의 유물들을 용산에 신축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긴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1990년 이후 경복궁의 복원작업에 의해 복원된 현재 경복궁의 배치도 입니다. 많이 복원이 되었지만 아래의 북궐도에 있는 본래의 경복궁으로 복원하려면... 태조가 1394년9월에 "신도궁궐조성도감'을 설치하여 부터 건설계획을 수립하여 서울건설계획을 세우고 경복궁은 북악의 남쪽기슭에 터를 잡았고 좌묘우사(左墓右社)의 법식에 따라 종묘와 사직단을 동서에 배치, 착공 1년 반만에 380여 칸을 완공을 하였고 시경에 나오는 '술에 취하고 덕에 배부르니 군자 만년 그대의 큰복 경복을 누리소서'의 구절을 인용.. 더보기
041126 덕수궁(3/3) --덕수궁(2//3)에서 계속- 조선시대의 왕궁건립에는 나름대로 어떤 규칙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중의 하나가 궁궐의 정문을 들어서면 서류동입하는 명당수와 이를 건너는 다리가 있다고요. 대한문의 보수공사를 하기 때문에 자세히 살펴보지는 못했는데 아마도 이 연못이 대한문 앞을 흐르는 명당수와 연결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고 이 명당수에는 금천교라는 다리가 놓여 있답니다. 명당수는 터를 상서롭게 하는 풍수지리적인 의미도 있지만 입궐하는 대신들이 명당수의 깨끗한 물에 사된 마음을 털어버리고 공명정대하게 국정에 임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하네요. 아울러 이 명당수를 건너는 다리는 성스러운 내부공간과 외부공간을 구분하는 의미가 있다구요, 대한문으로 들어와 금천교를 건너면 정면 우측에 세종대왕의 앉혀져 있습니다. 세종대.. 더보기
041126 덕수궁(2/3) -덕수궁(1/3)에서 계속- 덕수궁에 대한 글을 찾아보면 대부분이 비운의 궁궐로 자주 표현되고 있는데 아마도 대한제국 말기의 격변의 풍운을 겪은 곳이라 그렇게 표현되는 모양입니다. 그렇지만 이곳은 고종이 왕실의 권위를 위하여 왕궁으로서 손색이 없는 규모로 확장을 하고 국호를 대한제국, 연호를 광무로 선포하여 근세사의 한장을 열었던 역사적인 궁으로 우리 후손, 특히 나라살림을 하는 위정자, 공직자들에게 귀한 교훈이 되는 곳인데... 고종황제가 내외귀빈을 접견하던 곳으로 1904년 소실되어 1911년에 중건하였답니다. 3단의 세벌대 기단에 앞쪽에는 한단낮게 계단을 덧붙였고 기둥머리에는 새날개 모양의 익공을 설치했다구요. 보물 제 820호인 함녕전은 고종황제의 침전으로 일상적으로 거처했던 곳인데 1904년 화.. 더보기
041126 덕수궁(1/3) 2004년 11월 26일... 덕수궁을 찾아 봅니다. 덕수궁터에는 세조의 큰아들인 의경세자의 묘가 있던 곳으로 세자빈 한씨가 그옆에서 살았고 슬하에 월산대군과 자을산대군있었고 차남인 자을산대군이 성종으로 입궐하자 한씨도 같이 입궐을 하였고 그 집은 월산대군의 사저가 되었답니다. < 그후 임진왜란때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선조가 월산대군의 후손들이 살던 이곳을 행궁으로 삼았고 광해군이 즉위하며 '경운궁'이라 불렀으며1895년 을미사변때 명성황후가 시해되자 고종은 황태자와 러시아 공관으로 파천을 하고 경운궁으로 환궁하여 즉조당을 정전으로 이용하였으나 왕실의 존엄성을 과시하고자 왕궁으로 확장수리하여 중화전을 비롯한 주요 전각들을 세워 창덕궁에 견줄만하였다고 합닌다. 1904년 방화로 추측되는 화재로 인하여 대부.. 더보기
041119 마곡사 2004년 11월 19일 이른 아침에 마곡사를 찾아 갑니다. 짙은 안개가 깔려 사진을 담을 수 있을까 걱정을 했는데 도착하니 안개가 많이 걷히고 있었습니다. 마곡사는 조계종의 대전/충남지역의 70여 사찰을 관장하는 대본산인데 의자왕때(643년) 자장율사가 창건하고 고려명종때(1172) 보조국사가 증건을 하였고 마곡사라는 이름은 신라의 보철화상이 법문을 열때 모인 대중이 삼밭의 삼대(麻)와 같이 많이 모였다 해서 붙인 이름이라구요. 이곳은 초등학교 때 몇번인가 소풍을 왔던 곳으로...일제시대에 김구선생이 숨어지냈었다는 설도... 착각인지는 몰라도 기억속에는 심검당에는 석탑쪽으로 각 승방의 출입문과 됫마루가 있었고 툇마루에는 목어가 달려 있어 때가 되면 스님들이 이를 막대 두개로 드럼치듯이 두드리던 모습이 .. 더보기
041106 봉화산 봉수대지 2004년 11월 6일 오전에 게으름을 피우며 책을 보다 졸다 하니까 안식구가 답답한지 봉화산에 걸어가보자고 합니다. 별로 멀지 않은곳에 있는데도 가본일이 없어 웃을 대충 입고 안식구와 같이 원자력병원-화랑대역-신내동으로 걸어 가는데 버스 등 좀 큰차가 지날 때마다 먼지가 나서 짜증이 나구요. 봉화산의 산책로를 들어서서 올라가는데 숲도 좋고 중간 중간에 운동기구도 있고... 나중에 안내도를 보니 꽤 넓은 공원이며 사방 여러곳에 접근로가 있어 아주 괜찮은 산책로입니다. 꼭대기에 봉화대가 있고 안내문이 있는데 '아차산 봉수대지'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산의 이름은 봉화대가 있어 봉화산 또는 봉우재라고 불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안내문을 보니 문헌에 있는 아차산 봉화대를 한동안 광진구에 있는 아차산에 있.. 더보기
041031 표충사 2004년 10월 31일 천황산의 하산길을 표충사로 잡아 경내를 둘러봅니다. 표충사는 신라 무열왕때 원효대사가 세운절로 죽림사로 명명되었다가 영정라로 바뀌었으며 헌종5년(1839)에 밀양의 무안이라는 곳에 있던 표충사(表忠祠)라는 사당에 있던 사명, 청허, 기허대사의 위패를 이리로 옮기면서 지금의 표충사(表忠寺)로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어 있다고 합니다.해남에 있는 대흥사의 경내에도 사명대사를 모신 표충사(表忠祠)라는 사당이 있던걸로 기억이 되는데 아마도 전국 여러곳에 이런 사당이 있는 모양입니다. 서원은 사설교육기관이자 대유학자들에게 제사를 하는 곳인데 대원군때 서원철패령에 따라 건물이 많이 파괴되었다가 1926년 대화재때 소실되어 중건을 하였으나 유교의 서원과 불교의 법당이 같이 있을 수 없다는 승려.. 더보기
041020 경포대 경포호를 끼고 경포대로 향합니다. 강릉에 자주 왔었지만 언덕위에 있는 경포대는 처음 올라가는것 같네요. 도로변 언덕위에 앉아서 경포호를 바라보고 있는 구조가 되다 보니 사진을 담기가 좀 그렇습니다.경포대는 고력 충숙왕 13년(1326) 강원도 안렴사 박숙정이 방해정 뒷간 인월사 옛터에 지은것을 조선 중종 3년(1508) 강릉부사 한급이 현 위치로 옮겨 지은후 몇차례의 중수를 하였답니다. 그래도 얼굴은 보아야 하겠길래 억지로 담아 봅니다.경포대의 글씨는 유한지라는 분이 썼고 경포대 내부에는 율곡선생이 10세에 지은 경포대부라는 시를 비롯해 숙종의 어제시, 조하망의 사량문 등 여러 명사들의 기문, 시판이 걸려 있답니다. 한시광장에는 송강 정철선생의 관동별곡비(가운데 서있는 비)가 서있고 주변의 돌에는 한시가.. 더보기
041020 허난설헌 생가 강릉 경포호옆 바닷가에가면 간수를 쓰지않고 해수를 써서 만드는 초당두부가 유명하답니다. 그러다 보니 강릉에 갈적마다 한번씩 들러 모두부, 순두부, 두부찌게 등의 맛을 보곤 하구요.여기도 두부음식점이 몇군데 있는데 서로 원조라고 해서...두부반찬에 식사를 하고 나오는데 화단에 한련화 꽃이 활짝 피어있습니다. 솔밭으로 나오니 호정이라는 시비도 눈에 들어오네요. 그리고 북쪽으로 고택이 눈에 뜨이는데 허균과 허난설헌이 태어난 생가라고 하는데 문이 잠겨있어 요리저리 돌아보지만 들어갈 방법이 없어 외부 모습과 카메라를 높이 들어 담안의 모습도 담아봅니다. 건물의 안내문에는 건립연대가 미상이지만 이들 남매의 아버지인 허엽(1527~1580가 살던 집이라고 하니 꽤 오래된것 같은데...외부에서 보기로는 건물의 보존상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