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돌이

하롱베이(1/4) - 베트남 1998년말에 월남(越南)에 있는 현장으로 부임하였습니다. 대충 현장 업무를 파악한 뒤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롱베이(Halong Bay)를 둘러보러 갑니다.Halong은 한자로 표기하면 下龍으로 옛 전설에 따르면 외적이 이 쪽으로 침략을 하면 용이 내려와 불을 토하여 섬멸하였으며, 그 때의 불꽃들이 수천개의 아름다운 섬으로 변했다고 합니다.아쉬운 것은 당시에 디카가 없어 자동필름카메라로 사진을 찍었는데 이를 다시 디카로 옮기다 보니 화질이 아주 좋지 않습니다. 하롱市의 부두에서 유람선을 전세내어 하롱만 관광을 시작하는데 바다는 뿌연 연무에 가려있습니다.하노이를 비롯한 북부지방은 12월부터 그 다음해 4월까지는 항상 안개가 끼어 있는 시기입니다.그 덕분에 미국과 전쟁을 하면서도 이 기간에는 .. 더보기
탑골공원 (060206) - 삼일운동의 성역 2006년 2월 6일, 약속이 있어 인사동으로 가다가 탑골공원 옆을 지납니다. 시간을 보니 여유가 있어 탑골공원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부근을 그렇게 많이 다녔어도 차분하게 둘러본 기억이 없습니다.나이드신 분들이 여기에서 소일을 하신다는 얘기만 들었는데 오늘은 한번 둘러보려고 합니다. 탑골공원은 대한제국의 재정 담당 고문이었던 영국인 브라운의 건의로 광무 원년(1897)에 원각사라는 절이 있던 자리에 세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공원이라고 합니다.원각사는 조선 세조의 명으로 1465년에 고려시대 흥복사의 절터에 건립한 사찰로 조계종의 본사로 번성을 했었다고 하네요.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1일에 이 공원의 팔각정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였고, 4~5천명의 학생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 더보기
덕수궁 (060125) - 대한문 보수 후 2006년 1월 25일, 시청 앞 덕수궁 옆을 지나다 무심코 돌아보니 대한문이 보입니다.2004년 말 부터 고궁을 돌아볼 때 이 대한문은 보수작업을 하느라고 흉물스런 먼지막이로 가려져 있었는데 이제 완공이 된 모양이네요.복원된 대한문을 담고 그냥 지나가려니 좀 아쉬움이 남고, 시간 여유도 있어 입장권을 구입하여 안으로 들어갑니다.지난번에 자세히 돌아보았고 작년(2005년) 3월 경에 여기에 올려놨으니 오늘은 대충 돌아보고 사진이나 올릴까 합니다. 이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으로 덕수궁의 정문입니다.일반적으로 궁의 정문은 2층구조의 중문인데 1904년 큰 화재로 소실된 궁을 중건할 때 중화전을 단층으로 지으면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단층으로 지은것으로 보입니다.중화전, 중화문과 일직선으로 남쪽에.. 더보기
서계 박세당 선생 고택(060124) 2006년 1월 24일, 장암역에서 내려 수락산으로 올라가다가 잠시 짬을 내어 수락산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3호인 서계 박세당 선생의 고택으로 향합니다.날씨가 조금 풀렸다고 하지만 간간히 불어오는 칼바람은 옷깃을 여미게 하네요.몇 번 찾아 왔었지만 고택 입구에 있는 일반인 출입금지 표식을 보고 그냥 발길을 돌리곤 했는데 오늘은 들어가 고택을 둘러보려고 합니다. 입구를 들어서 정면 우측에 있는 고택의 원경을 담고 왼쪽에 있는 살림집으로 향하자 여기 저기에서 개들이 짖기 시작합니다.그 중 두 녀석이 내게로 쫓아와 적의를 드러내며 짖어 대어 손을 내밀어 적의가 없음을 표하니까 꼬리를 약간 흔들면서 목소리를 낮추어 으르렁 거리며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살림집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자 .. 더보기
덕유산 백련사(060114)-계단유감 2006년 1월 14일, 덕유산 향적봉을 오르다가 구천동 계곡의 상류에서 '백련사'라는 절을 만나 잠시 발길을 멈추고 사찰 경내를 둘러봅니다. 제일 먼저 백련교 앞에 있는 '백련사지'에 대한 안내판을 만납니다.신라 신문왕(681~691) 때 지은 백련사가 있던 터인데 전라북도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었네요.여러차례 중창을 했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버린것을 1962년 이후에 다시 지었는데 무주 구천동에 있던 14개 사찰 중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절이라고 합니다.'백련사지'안내판을 지나면 바로 백련교가 나오는데 1970년대에 콘크리트로 만든 다리입니다. 백련사로 들어가는 일주문이 도로 한 가운데 버티고 서 있는데 자연스런 모습이 아닙니다.무언가가 부자연스러워 보이는데......일주문을 지나니 안내판에는.. 더보기
여주의 설경과 목아박물관 (051203) 2005년 12월 4일, 새벽에 일어나 발코니 밖의 한강을 보니 눈이 하얗게 내렸습니다. 어제 과음을 해서 머리는 좀 무거웠지만 하얀 눈을 보니 기분이 밝아지고 머리고 가벼워지는 느낌이네요. 모두들 새벽 사우나를 하러 가는데 귀찮아서 간단히 샤워를 하고 창밖의 눈을 구경합니다.그런데 여주대교에서 오던 차가 우회전을 하더니 갑자기 미끄러져 이쪽 차선으로 들어오더니 360도 회전을 하네요.깜짝놀랐는데 다행인 것은 이쪽 차선에 운행하는 차가 없어 사고는 모면했고요. 남한강 건너편의 언덕위에 조용히 앉아 있는 정자가 아침햇볕을 받고 있습니다. 아침식사를 하면서 일정을 조정합니다.눈도 오고 길도 미끄러우니 고달사지 등은 생략하고 목아박물관만 다녀오기로 했고요.그런데 길이 보통 미끄러운게 아니네요.엉금엉금 거북이 .. 더보기
여주 신륵사 (051203) 2005년 12월 3일, 남한강가 매운탕집에서 나와 슬슬 걸어서 신륵사로 갑니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문헌이 없어 정확한 년대는 알지 못한답니다.전설에는, 어느날 원효대사의 꿈에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던 연못을 가리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 라고 일러준 후 사라지니,그 말에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으나 뜻대로 잘되지 않았고 이에 원효대사가 7일동안 기도를 올리고 정성을 드리니 9마리의 용이 그 연못에서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그곳에 절을 지을수 있게 되었다고요. 신륵사의 입구에는 일주문이 높직하게 자리를 하고 있는데 주변과는 어우러지지 못하는 모습이네요.또한 절 이름에 관한 유래로는 다음과 같은 두 가.. 더보기
세종대왕 영릉 (051203) 2005년 12월 03일, 명성황후생가를 나와 세종대왕의 영릉으로 향합니다. 여기에는 세종대황의 영릉(英陵)과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이웃하여 있는데 오늘은 세종대왕의 영릉만 둘러보기로 했습니다.묘역에서 만난 안내원의 말에 의하면 효종대왕의 릉이 세종대왕과 같은 음인 영(寧)으로 한것은 효종대왕인 봉림대군 시절에 청나라에 불모로 잡혀가 마음고생이 심하였기 때문에 편한히 쉬라는 뜻으로 寧으로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데 믿거나 말거나고요. 영릉은 원래 서울의 헌릉 서쪽에 있었던 것을 예종 원년(1469)에 여주로 옮겨 왔고 이때 소헌왕후와 합장을 하였다고 합니다.아울러 1975년에 영릉 보수 정화 사업을 하면서 세종전(유물전시관)을 짖었다는데 이 안에는 많은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고 또한 이 앞 뜰에는 세종대왕.. 더보기
명성황후생가 (051203) 2005년 12월 03일, 여주에 있는 콘도 두 개를 잡아놓고 가까운 직장 동료 네 쌍이 세상돌이를 떠납니다. 먼저 명성황후 생가로 향합니다. 명성황후의 생가야 집 한채 뿐인데 그 앞에는 테마파크를 조성하였놓았습니다.연못을 꾸미고 정자를 세웠고 황후와 연관이 있는 테마의 조각상들이 여기 저기 놓여 있습니다. 명성황후는 흥선대원군의 부인인 부대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고종 3년(1866) 왕비로 책봉 되었다고 하는데, 간택된 이유가 8세 때 부모를 여의어 외척의 폐해가 없을 거라는 대원군의 속내가 작용을 하였다고 하네요.하지만 고종의 사랑을 별로 못 받고 자신이 낳은 왕자가 5일 만에 세상을 떠나는 등 상황을 좋지 않았다고 하는데 천성이 총명하여 얼마 후 부터는 왕실정치에 관여하기 시작하여 시아버지인 대원군과.. 더보기
무창포 (051117-8)-석대도 물길이 열리는 날 2005년 11월 17일 저녁, 친구들과 동부인하여 무창포로 떠납니다. 12월에는 모두 스케줄이 바쁠것으로 보여 미리 땡겨서 바쁘지 않은 11월에 모이게 되었네요.지난 봄에는 남자들만 모여 무창포를 갔다 왔는데 안식구들의 분위기가 심상찮아 요번에는 동부인하기로 했고요.언제나 그렇듯이 친구들이 모이면 어린아이로 돌아가고 거기에 술잔이 돌아가면서 분위기 오릅니다. 무창포에 도착하니 그쪽의 터주대감인 친구가 생선회와 저녁을 준비해 놓았네요.매운탕을 끓이고 바로 술판이 벌어지고 주흥이 오르면서 수다로 늘어갑니다.안식구들의 성화에 못 이겨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고요. 새벽에 일어나 밖으로 나오니 바다에는 엷은 안개가 끼었고 네비게이터만 홀로 바다에 떠 있습니다. 방파제 쪽을 보니 바닥이 많이 들어나 보여 물이 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