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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낙안읍성(060226) - 옛맛이 나지 않는 옛동네

2006년 2월 26일, 숙소인 광양제철 영빈관인 백운관에서 눈을 뜨니 동계올림픽 숏트트랙 경기가 한창입니다.
실격으로 메달을 하나 잃었지만 오늘만 금메달 세개에 동메달 하나 거둬들였네요.
상큼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고 커튼을 걷으니 구름하나 없는 맑은 하늘이 눈에 가득 찹니다.
어제밤 늦게까지 봄비가 추적추적 내렸었는데 언제 비가 왔었냐는 듯......
작년에도 그랬는데......어쩜 작년과 날씨가 똑 같은지 모르겠네요.
식사를 하고 광양제철로 들어가 브리핑을 듣고 열연공장을 둘러보고는 낙안읍성으로 향합니다.

 

<동문-낙풍루>
광양쪽으로 출장을 올때마다 시간을 내어 가봐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던 곳인데......
이번 일정에 잡혀있습니다.
낙안읍성 앞의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서 내리니 토산품을 파는 좌판에서 손님을 맞기위해 경쟁적으로 호객을 합니다.
낙안읍성의 동문, 옹성으로 성문을 보호하고 있고 문루에는 '낙풍루'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이 문을 통하여 읍성으로 들어갑니다.


<입경업 선정비>
낙풍루를 들어서니 1626~1628년에 낙안군수를 지냈던 임경업장군의 선정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는 받침돌(龜趺)위에 머릿돌이 있는 비신을 올린 전형적인 모습인데 왠지 비신의 키가 이수나 귀부에 어울리지 않게 작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임경업장군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삼아 매년 정월 보름에는 제사를 지내고 있답니다.
낙안읍성은 현존하는 조선시대의 읎성가운데 보존이 가장 잘 된 곳이라고 하는데 다른 읍성과는 달리 읍성안에는 100여 세대의 민가가 있는데 옛모습이 조금씩 훼손되고 있어 1983녕에 사적으로 지정하고 일부 초가집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하였으며, 일부 변형되거나 낡은 집들은 복원, 수리하였다고 합니다.

 

<돌담골목>
동네는 이곳저곳으로 골목이 나있는데 낮으막한 돌담길이라 옛날의 정취가 배여납니다.
낙안읍성은 고려 후기에 왜구의 잦은 침입이 있어 조선 태조 6년(1397)에 흙으로 쌓았다고 합니다.
그 후에 1423년부터 여러 해에 걸쳐 돌로 다시 쌓아 성의 규모를 넓혔다고요.

 

<성황당?>
성황당으로 보이는데 자연스런 모습이 아니고 인위적으로 꾸며 놓은 냄가가 심하게 납니다.

 

<낙안객사>
임경업장군 선정비에서 조금 안으로 들어가면 우측으로 홍살문이 있고 그 뒤로는 낙안객사가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객사는 손님을 접대하는 곳으로 외국이나 조성에서 파견된 사신의 숙소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 객사는 세종 32년(1450) 군수 이인이 건립하였고 그후 인조9년(1631)과 철종8년(1857)에 각각 수리를 하였다는기록이 남아있다고 합니다.
낙안읍성의 네모진 모습으로 길이는 1410m라고 합니다.
그리고 동, 서, 남쪽의 세곳에는 상안의 큰 도로와 연결된 문이 있고 적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기 위한 네곳에는 성벽 밖으로 돌출되어 있는 치성이 있습니다.

 

<낙안객사 본전 - 낙안지관>
낙안객사는 1900년대 초까지는 모두 보존이 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이 객사의 본전은 1909년 이후에 낙안초등학교 건물로 사용되어 않팎으로 변조된 부분이 많았는데 1982년에 다시 보수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환벽한 좌우 대칭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중앙부분을 맞배지붕의 구조이고 양쪽의 날개집은 팔작지붕의 구조로 되어 있고요.


<궐패>
낙안객사는 손님을 접대하는 장소이지만 아울러 임금에 대한 예를 올리기도 했다고 합니다.
대청에는 임금을 상징하는 궐패(闕牌)가 놓여져 있는데, 이는 매월 초하루와 보름 때에 이곳의 관리와 고을 선비들이 모여 이 패를 보고 망궐례(望闕禮)를 올렸다고요.
아마도 임금을 뵈러 한양에 올라가지 못하니까 이 궐패를 임금 삼아 이런 모임을 갖았던 모양입니다.


<동헌 전경>
낙안객사를 나와 안으로 더 들어가니 동헌의 모습이 보이는데 방진막을 쳐 놓고 보수중입니다.
그런데 동헌의 규모가 객사보다 적은 규모로 보이네요.
아마도 객사에는 임금을 대신하는 궐패가 있어 더 크게 지은 모양이지요?

 

 <동헌-사무당(使無堂)>

동헌의 본전인 사무당입니다.
본전에 붙어 있는 현판에는 사무당(使無堂)이라는 글씨가 새겨있습니다.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의 사무당은 지방행정 업무를 처리하던 곳이라고 하는데 사무당(使無堂)을 검색해보니 1990년에 옛기록을 근거로 이 동헌을 복원하였는데 당호를 알 길이 없어 고민을 하다가 낙안읍지에 조선말 낙안 군수를 지낸 민영은, 신병우가 지은 '사무당운'이라는 시 구절이 있어 의견을 모아 당호로 정했다고 하네요. 그리고 거기에는 덧붙여 "송사를 듣는 일은 나도 남과 같다. 반듯이 송사 같은 일은 없게 할 수 없는가'라고 논어 안연편에 '사무使無)'라는 글귀를 담고 있는 이야기가 나온다고 되어 있습니다.
(서정일의 <낙안 민속마을의 사계>에서..)

 

<기념촬영>
일행 몇 몇이 사무당 앞에 모여 기념촬영을 합니다.
항상 그렇지만 기념촬영을 할 때는 모두들 굳어 있는 표정에 차렷 자세이네요.
동헌 앞마당 우측에 곤장을 칠때 사람을 묶어 놓는 형구가 있는데, 그 형구가 눈에 들어와 모두들 경직이 된것은 아니겠지요.

 

<락민루 樂民樓>
동헌 앞에는 락민루라는 루각이 우뚝 솟아 있습니다.
백성을 즐겁게 해 준다는 뜻 같은데......
임경업장군의 선정비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백성을 위하려고 했다는 냄새를 풍기는 흔적이 느껴지는데 정말 그 시대의 관리들이 그랬는지 아니면 복원을 하면서 이런 이름을 붙였는지?
락민루에는 큰 북이 걸려 있네요.

 

<내아>
동헌에 담장을 사이에 두고 붙어 있는 내아입니다.

 

<남문-쌍청루>
마을을 가로질러 남문으로 향합니다.
남문으로 가는 길 옆에는 '큰 우물'안내문이 있는데 군수가 마셨던 우물이라서 그렇게 부른다고요.
남문도 동문과 같이 옹성으로 성문을 둘러 싼 형식으로 지은 건물입니다.

 

 

<남문-성벽 위>
남문에서 성벽으로 올라섭니다.
성벽 위는 약 3m정도의 넓은 통로로 되어 있습니다.

 

<마을 풍경>
성벽에 올라 마을을 담아봅니다.
초가집의 동네모습이 눈에 들어오는데 뭔가 좀 부자연스러운 모습이네요.
여러곳에 이곳 낙안읍성을 설명하면서 잘 보전된 초가집을 강조하고, 어떤 이는 객지에 나가 살다가 오랫만에 고향에 돌아와 '어머니!'하고 부르고 싶은 충동이 이는 모습이라고 표현을 했던데......
초가집이 많았던 어릴 때 시골의 모습하고는 조금 다르지요.
초가지붕을 덮는 것을 '이엉'이라고 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가을 걷이를 끝내고 나면 새 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의 옷을 갈아 입히는게 큰일이었던 것으로 기억이 됩니다.

 

<물레방아>
집에서 일하던 아저씨가 몇 날을 쉬지 않고 새로 추수한 짚으로 이엉을 엮고, 이웃들과 품아시을 하여 이집 저집 돌아가면서 지붕 옷을 갈아 입히는데, 저렇게 동네 전체가 지붕 옷을 갈아 입히지 않았습니다.
일하시는 아저씨에게 왜 헛간만 지붕을 갈고 대문간은 갈지 않느냐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매년 지붕옷을 갈아 입히는게 아니고 돌아가면서 격년, 아니면 3년에 한번씩 갈아입힌답니다.
보기와는 달리 초가지붕도 2~3년은 견딘다는 이야기인데 그것보다도 5개의 지붕을 다 갈아입히려면 엄청 큰일이기도 했다는 얘기입니다.
저렇게 한결 같이 샛노란 새 지붕의 풍경보다는 좀 색이 바랜 지붕과 새지붕이 섞여 있으면 훨씬 보기도 좋을 텐데......
평지에서 돌아가는 물레방아도 좀 그렇지요?
물레방아가 있을 위치도 자리도 아닌데서 물레방아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습니다.
물레방아는 자연적인 물의 흐름과 낙차로 방아를 돌려서 곡식을 도정하던 선현들의 지혜인데...
어린 아이들이 여기에 와서 이 물레방아를 보고 무엇을 느낄까요?
'물레방아는 펌프로 물을 퍼 올려서 돌리는 것'이라고 알고 가겠지요.

 

<성벽>
성벽의 모습인데 참 보기 좋습니다.
서울에 있는 고궁들의 돌담, 새로 복원한 북한산성을 보면 너무 획일적으로 쌓은 모습에서 사람들의 손냄새가 많이 나는데 이 성벽은 조금 느낌이 다릅니다.
사람 손으로 쌓았겠지만 돌의 모습을 그대로 살려 쌓은 벽이 보고 있는 눈을 참 편하게 합니다.

 

<고인돌>
성벽 위를 걸어 동문으로 나옵니다.
낙안읍성 안내도를 보니 동문 밖에 고인돌 군이 있다고 되어 있지만 어떤게 고인돌인지?
매표소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동문 밖 공터에 띄엄 띄엄 깔려있는 돌들이 고인돌이랍니다.
고인돌하면 'ㅠ'모양의 받침돌 두개와 덮개석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머리에는 인식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이 그림에 있는 돌의 밑에 받침돌 비슷한게 눈에 들어와 그나마 고인돌의 공식에 가장 가깝게 보여 담아왔습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는데 너무 옛 모습을 강조하려고 꾸미다 보니 눈에 거슬리는게 많았지만, 자연을 거스리지 않고 보기 좋게 쌓아놓은 성벽이 잘 보존되어 있어 그나마 다행인것 같습니다.
좀 아쉬운 것은 해미와 고창의 읍성에 갔을 때는 인위적으로 손을 댄 흔적이 없고 관광지로 개발이 덜 되어서 그랬는지 고즈녁한 고성의 맛을 보았는데, 이 낙안읍성은 꼭 유원지에 온 느낌이라면 너무 심한 표현이 되나요?

 

 

<낙안읍성 안내도>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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