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돌이

덕수궁 (060125) - 대한문 보수 후

2006년 1월 25일, 시청 앞 덕수궁 옆을 지나다 무심코 돌아보니 대한문이 보입니다.

2004년 말 부터 고궁을 돌아볼 때 이 대한문은 보수작업을 하느라고 흉물스런 먼지막이로 가려져 있었는데 이제 완공이 된 모양이네요.
복원된 대한문을 담고 그냥 지나가려니 좀 아쉬움이 남고, 시간 여유도 있어 입장권을 구입하여 안으로 들어갑니다.
지난번에 자세히 돌아보았고 작년(2005년) 3월 경에 여기에 올려놨으니 오늘은 대충 돌아보고 사진이나 올릴까 합니다.


<대한문>
이 대한문의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으로 덕수궁의 정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궁의 정문은 2층구조의 중문인데 1904년 큰 화재로 소실된 궁을 중건할 때 중화전을 단층으로 지으면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단층으로 지은것으로 보입니다.
중화전, 중화문과 일직선으로 남쪽에 배치되었던 것을 중건할 때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환구단을 향하도록 동쪽으로 옮겨서 돌계단 위에 삼문으로 세워졌는데, 지금은 도로에 밀려 뒤로 물러섰고, 돌계단은 도로 밑으로 묻혀버렸답니다.
대한문 가운대 양쪽 기둥 앞에는 두마리의 석수가 버티고 앉아 나쁜 기운이 들어오지 못하게 감시하고 있습니다.



<덕수궁배치도>
대한문을 들어서면서 바로 만나는 덕수궁의 배치도입니다.


<금천교>
대한문을 들어서면 명당수를 건너는 금천교가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금천교 앞에는 '하마비(사진의 관광안내소 앞)'가 서있어 누구를 막론하고 말에서 내리도록 하였는데 금천교 밑의 명당수에는 물이 없네요.
금천교를 복원할 때 명당수도 복원을 했으면 좋으련만 다리 주위에만 이렇게 복원을 해놓고 자갈을 채워 놓고 물길은 연결이 되지 않았습니다.
경복궁의 영제교, 창덕궁의 금천교, 또 보수공사 후에는 가보지 않았지만 창경궁의 옥천교 밑의 명당수에는 물이 흐르고 있어 고궁의 운치를 한층 더해 주고 있는데......많이 아쉽습니다.
궁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명당수는 왜 있는지, 어떤 의미인지를 알려주는 안내문도 보이지 않았고요.
<대기소?>
금천교를 건너 중화문으로 가는 중간에 'ㄱ'자형의 건물이 앉아 있습니다.
아마도 중화전을 두르고 있던 행각의 코너 부분으로 보이는데 나머지 행각은 남아 있지 않네요.


<중화문-보물제819호>
중화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으로 세단의 석대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중화전 좌우로 쭉 둘러 있었을 행각은 남아 있지 않고 중화문만 우뚝 서 있어 문을 역할을 못하고 있습니다. 중화전과 함께 보물 제81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중화전-보물제819호>
본래 중층의 웅장한 건물이었으나 1904년 화재로 소실되고 단층으로 중건을 하였다고 합니다.
덕수궁의 중심건물로 2단의 월대 위에 계단을 설치하고 단층으로 지은 정면 5칸, 측면 4칸에 다포계 공포로 겹처마의 팔작지붕의 구조를 하고 있습니다.
중화전 앞, 월대 밑 마다은 박석을 깔고 품계석을 설치하였으며 중화문에서 답도까지 삼도를 구성하고 있습니다.


<중화전의 월대 및 답도>
2단의 월대를 올라가는 계단입니다.
삼도 중의 가운데는 황제만이 다니는 답도로 가운데에는 봉황 한쌍이 어우러진 문양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중화전의 용상>
중화전 안의 중앙에는 용상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9개의 계단 위에는 옥좌가 있고 그 위쪽은 보개로 덮었으며 뒤쪽에는 제왕의 상징인 '일월오악도(일월오봉도)'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중화전 천정의 쌍룡>

중화전의 천정에는 황료 한쌍이 찬란한 금빛을 내 뿜고 있습니다.



<함녕정 행각>
덕홍전과 함녕전을 둘러 안고 있는 행각입니다.
원래는 덕홍전과 함녕전의 행각이 구분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같이 붙여 놓았는데 원래의 모습을 잃어버렸다고 합니다.
<광명문>
지금은 덕수궁의 서남쪽에 위치하여 여러가지 문화재의 안고 있는데 위 그림의 남쪽 행각에 위치하여 덕홍전의 정문이었다고 합니다.

<덕홍전 행각 쪽문>
중화전에서 덕홍전으로 들어가는 쪽문입니다.


<덕홍전>
황제가 내외 빈객을 접견하던 처소랍니다.
지금의 건물은 1911년에 개조한 것으로 마치 사무처소인 편전과 같은 구조라고요.


<함녕전-보물제820호>
황재의 침전입니다.
정면 9칸, 측면 4칸으로 사각의 기둥을 사용한 팔작기와지붕의 형식입니다.
평면은 4칸이 뒤에 붙은 'ㄱ'자형이며 1919년 1월 22일에 고종이 이곳에서 승하를 하였다고 합니다.

<정관헌>
1900년에 세운 건물인데 고종황제는 이곳에서 다과를 들고 음악을 들으며 휴식을 취하던 장소라고 합니다.
한 때는 태조, 고종황제 및 순종황제의 영정을 모시기도 했었다고요.

<석류문>
덕홍전의 후면 'ㄱ'자 담벽에 붙어 있는 쪽문으로 바로 위쪽 3m정도 떨어진 곳에 용덕문이 있습니다.


<용덕문>
석류문 바로 옆에 있는 용덕문인데 이렇게 가까운 곳에 두개의 문이 있던 것으로 보아 지금은 문안이 같은 뜰로 되어 있지만 뜰안에도 담장이 있던게 아닐까 추측을 해봅니다.


<?현문>
함녕전 뒤뜰로 들어가는 문인데 문 이름의 첫자는 모르는 한자입니다.
정자로 썼으면 자전이라도 찾아 볼 텐데......
다른 문과는 달리 벽돌로 다양한 문양을 넣어 이 안 쪽이 후원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지?

<창신문>
정관헌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석어당>
중화전의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임진왜란 때 환궁한 선조가 유일하게 남아있던 이 건물을 임시궁궐로 삼아 기거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역대 국왕들이 임진왜란 때의 어렵던 일을 회상하여 선조를 추모하였다고 하는데 그래서 인지 1904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지었지만 단청을 하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습니다.

<석어당 옥내현판>
석어당의 내부에 있는 현판입니다.

<석어댱 옥외현판>
석어당의 2층 처마밑에 있는 현판입니다.

<즉조당>
제15대 광해군과 16대 인조가 즉위한 곳인데 고종황제 때 중궁전으로 사용하여 후비인 순헌황귀비(엄비)가 이곳에서 거쳐하다가 승하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순종이 이 곳에서 즉의를 하고 융희 원년이라고 연호를 하였다고요.
정면 7칸, 측면 3칸으로 평면은 'ㄱ'자형이며 쥰명당과 복도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즉조당의 후원>
즉조당의 뒤쪽에는 얕트막한 후원이 꾸며있고 벽돌로 쌓은 굴뚝이 그 사이에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준명당>
엄비가 즉조당에 거쳐할 때 고종황제의 침소로도 사용되었던 건물이랍니다.
이 건물은 1904년의 화재 때 소실되지 않은 건물이라고요.
정면 6칸, 측면5칸의 팔작기와지붕의 전각이며 기둥은 함녕전과 같이 방주(方柱:사각형)입니다.

<석조전>
영국인의 설계로 1900년에 착공하여 1909년에 준공한 현대식 왕궁인데 1910년에 일제에게 주권을 빼았겼으니......
광복 후에는 미소공동위원회 회의장, 국립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으로 사용되었고, 궁중유물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궁중유물을 둘러보려고 했는데 내부 보수중이라 개관을 하지 않아 발길을 돌렸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연못>
대한문을 들어서 우측에 있는 연못입니다.
아마도 이 연못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명당수로 흘러 금천교 밑을 흘렀을 텐데......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못은 추운 날씨에 꽁꽁 얼어붙어 있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