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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돌이와 들꽃 일지

북한산 (050712): 우이동-백운대-중성문-대동문-우이동

2005년 7월 12일, 북한산으로 가기 위해 우이동으로 갑니다.
황산에 가기전에 있었던 한건산의 정기 북한산행이 좀 짧아 이 갈증을 풀어볼까하고요.
오늘은 백운대-용암문-대동문-진달래능선으로 일정을 그립니다.

<삼각산원경>
장마중이지만 오랫만에 비도 그치고 시계도 좋아 우이동에서 보는 삼각산의 자태가 선명하게 잡힙니다.


<우이동계곡>
우이동계곡은 수량이 마구 넘칠때보다 지금의 모습이 더 보기 좋습니다.


<우이동계곡>
우이동 계곡의 출입통제를 하지 않았던 때에는 꼬마들의 수영장이었던 이곳도 수량이 안정되자 푸른 물색을 되찾았습니다.


<인수봉>
하루재를 넘어 야영장에 오자 인수봉이 우람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인수봉 암벽에는 바위꾼들이 여기저기 눈에 띄이네요.

<인수봉암벽의 바위꾼들>
암벽을 오르는 저들의 모습을 한참 구경하다가 발길을 백운산장쪽으로 옮깁니다.


<백운대>
백운산장, 위문을 거쳐 백운대로 오릅니다.
백운대에는 곡대기에는 여러사람들이 올라 주변을 조망하고 있고요.


<백운대에서>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습니다.
<인수봉, 숨은벽능선>
백운대를 내려오기 전에 인수봉과 숨은벽능선을 담아봅니다.
위문에서 잠시 망설이다 이쪽 물길을 따라 가면 좀더 많은 꽃을 만나지 않을까 하여 원래의 계획을 바꿔 북한산성입구 쪽으로 내려갑니다.


<백운대원경-대동사쪽에서>
계곡을 내려오다 보니 대동사 입구에 도착, 물 한모금을 할까 하고 들어갑니다.
그런데 식수가 모자르니 물은 저 아래에 있는 약수에서 드시라고 안내문이 붙어 있네요.
이쪽에서 백운대를 보니 또 다른 모습으로 눈에 들어옵니다.


<중성문>
계곡을 내려가다 대서문, 대남문으로 갈라지는 삼거리에서 대남문쪽으로 발길을 돌려 한참을 오르니 중성문을 만납니다.
중성은 북한산성을 축조한 다음 해, 숙종38년(1712)에 지형이 평탄하고 취약한 대서문 방면이 적에게 뚫릴경우 산성수비를 보완하기 위한 대책으로 병목과 같은 이 일대 계곡을 차단하여 축조한 성으로 행궁, 유영, 창고 등 성내 시설물과 인명 보호 역할을 하였고 여기에 축조된 중성문은 홍예문의 기단에 단층문루를 올린 형식입니다.


<선정비 군>
중성문을 지나 선정비군을 만납니다.
북한산성을 관리하던 수성대장격인 충융사의 재임시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는데 암벽에 새겨진 것을 포함하여 21기 정도가 된답니다.


<북한승도절목>
선정비들이 세워있는 넓은 바위위의 한곳에 직사각형으로 판을 다듬은 곳에 작은 한자로 씌여진 음각된 암각문이 있습니다.
조선 철종 6년(1885)에 만들어진 북한승도절목이랍니다.
이는 북한산성내 승도(승병)의 대장인 팔도도충섭의 교체과정에서 생기는 폐단을 없애 산성수호에 완벽을 기할 것을 다짐하는 내용이라고요.


<대동문>
다시 길을 재촉하여 행궁지 갈림길을 경리창상창지를 지나고 나서 대남문과 대동문으로 갈라지는 곳에서 대동문으로 향합니다.
모처럼 인적이 드물어 깔금한 대동문을 담았네요.


<북한산-진달래 능선에서>
대동문을 나와 대동샘에서 목을 축인다음 진달래능선을 따라 우이동으로 내려갑니다.
우이동으로 올라 올때 맑게 보이던 삼각산도 이제는 스모그가 끼어 뿌옇게 보이지만 모처럼 개인 날씨라 한 컷을 담아보았습니다.


<등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