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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청계천의 다리 (050929)

2005년 9월 29일, 준공식을 이틀 앞둔 시점에 청계천으로 향합니다.
준공식 이후에는 많은 사람이 몰려들게 뻔하여 미리 돌아보려고요..



<청계천의 다리배치>
위의 그림과 같이 청계천에는 22개의 다리가 놓여있는데 그 이름은;
1.모전교, 2.광통교, 3.광교, 4.장통교, 5.삼일교, 6.수표교, 7.관수교, 8.세운교, 9.새벽다리, 11.마전교, 12, 나래교, 13.버들다리, 14.오간수교, 15.맑은내다리, 16.다산교, 17.영도교, 18.황학교, 19.비우당교, 20.무학교, 21.두물다리, 22.고산자교 이랍니다.
그런데 오늘은 16번 다산교에서 출발하여 1번 모전교까지 걷기로 합니다.


<'소망의벽'에 부착되어 있는 내 타일의 그림>
사실은 청계천을 돌아보는 목적도 있지만 청계천에 조성된 '소망의 벽'에 있는 내 그림타일을 보려는 속내도 있었는데 사전 준비없이 갔더니 소망의벽 위치를 몰라 찾지 못하고 막연히 다산교에서 모전교 방향으로 갔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황학교 아래쪽에 있다고 하네요.
중간 중간에 "청계천 종합안내도"라는 이름의 안내판이 있는데 다리 이름만 나오고 그 외의 시설물은 표기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위의 그림은 서울시에서 보내준 안내서에 따라 웹상에서 찾은 내 '그림타일'의 그림이고요.


<다산교>
맑은내다리쪽에서 본 다산교입니다.
친 자연적 이미지를 반영한 현대적 교량 사장교의 주탑을 풀잎모양으로 형상화를 했다는데 조선중기 실학자인 정약용의 호를 딴 다산로에 인접하여 다산교라고 이름을 붙였다고 합니다.
사장교의 주탑이라고 설명을 되어 있는데 조그만 다리에 그런 설명을 붙이니 좀 그러네요.



<맑은내다리>
다산교에서 본 맑은내다리 입니다.
나비의 힘찬 비상을 아치구조와 크로스 케이블로 조화시켜 힘찬 도약 연출, 패션 중심의 상징성 부여했다고 설명이 되어 있는데 '맑은내 다리'라는 이름은 '청계천'을 우리말로 바꿔서 붙인 이름이라고요.

<오간수교>
버들교 쪽에서 본 오간수교입니다.
동대문에서 을지로 6가로 가는 성벽 아래 청계천 6가에 있던 다리인데 홍예문(紅霓門)으로 다섯 칸으로 되었다 하여 "오간수다리" 또는 "오간수문" 이라 하였다 합니다.
설명문을 읽어보면 수원 화성의 화홍문처럼된 다리같은데 이렇게 평범한 다리로 복원을 해 놓다니...


<오간수문 모형?>
그나마 다행인것은 오간수교 옆의 청계천 벽에 위와 같이 홍예의 다리모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문화의 벽>
자연ㆍ환경을 주제로 한 현대 미술가 5인의 작품으로 오간수문 상류에 설치되어 있고 각각의 작품 크기는 가로 10m, 세로 2.5m라고 설명이 되어있습니다.


<분수>
그리고 그 앞 청계천바닥에는 분수가 설치되어 물을 쏘아 올리고 있는데 분수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화를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싱가포르 샌토사 섬의 음악분수와 비슷하게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버들교>
과거 오간수문 상류에 왕버들이 많았었다는 데서 명칭을 인용하였다는데 서울시 지명위원회에서 재검토를 권고하여 공식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류하였다고요.



<나래교>
나비의 힘찬 나래짓을 이미지화 하여 3차원 아치와 케이블로 나비형상화 유도했다고 합니다.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편 형상의 다리로, 동대문 의류상권의 중심지역에 위치하여 인근 동대문 의류상권이 세계 패션 1번지로 비상하는 의미를 담았다고요.



<마전교>
빛의 마을(창선)과 우마(牛馬 )시장의 유래표현을 위해 전통문살모양의 조명과 청동말(馬)상을 배치하였는데 교량의 이름은 인근 옛교량 명칭으로, 다리 부근에 우마(牛馬)를 매매하는 마전(馬廛)이 있었던 것에서 인용하였다 합니다.

<새벽다리>
시장 천막의 이미지를 막구조로 적용하여 동대문 재래시장의 역사성 및 향수 연출했답니다.



<배오개다리>
배오길을 넘는 사람들의 만남을 상징화 한 다리로 명칭은 현 종로4가 네거리에 배오개(梨峴)라는 고개가 있어 배오개길이라 명명했는데 여기에서 유래를 하였다고 합니다.



<세운교>
세운(조명)상가 특성을 활용해 빛을 표현한 다리로 세운상가의 명칭을 인용하였답니다.
양쪽 난간에는 커다란 수조를 설치되어 있습니다.



<관수교>
관수교(觀水橋)는 1918년 일본에 의해 지금의 청계 3가 사거리에 놓여있던 다리랍니다.
이곳에는 청계천 준설사업을 위한 준천사가 설치되어 있었고 다리의 명칭은 준천사에서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였다고 하는데서 유래했다고요.



<수표교 자리의 임시보도교>
다리에는 수표교라고 되어 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수표는 보이지 않네요.
그 수표는 홍릉에 있는 세종대왕기념관에 보관되어 있는것을 봤는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이 다리는 임시보도교로서 수표교 터에 위치하고 있으며, 시민과 주변 상인들의 편의를 위하여 수표교 복원 전까지 사용되어질 임시 다리라고 합니다.



<삼일교>
인사동, 명동성당 등을 연계한 근대 건축의 이미지 반영했다고 하며 다리의 명칭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선언을 한 뒤 전국에서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는 시위운동을 벌였기 때문에 이를 기념하기 위해 명명된 삼일로 인근에 위치하여 이렇게 붙였다고요.

<반차도>
삼일교에서 장통교를 지나서 까지 동쪽의 벽에는 반차도가 그려져 있는데 위의 그림은 그 가운데서 하이라이트 부분입니다.
이 반차도는 조선 정조가 1795년 윤 2월에 부친인 사도세자의 회갑을 기념하기 위하여 모친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화성(수원)과 헌릉원(사도세자무덤)을 다녀온 과정을 그린 그림이랍니다.
왼족 1/3지점의 중앙에 있는 가마는 혜경궁홍씨가 타고 있는 자궁이교로 말 두필이 앞뒤에서 멜 수 있게 만든것이고 1/2지점 중앙에는 정조가 타고 행차하는 좌마인데 그림에는 말만 있고 임금의 모습은 그려넣지 않았답니다.
우측에는 정조의 누이인 정현, 정선 두 군주가 타고 있는 가마 두채가 나란이 가고 있는 모습입니다.
올 봄에 수원의 화성행궁을 가보니 거기에 자궁이교가 보관되어 있으며 맨 뒤쪽의 행궁담벽에도 이 반차도가 그려져 있었습니다.


<장통교>
중구 장교동 51번지와 종로구 관철동 11번지 사이 청계천에 놓였던 다리랍니다.
다리의 명칭은 이 근방은 조선시대 장통방(長通坊)이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인데 부근에 긴 창고가 늘어서 있었다 하여 장창교(長倉橋)라고 불렀고 달리 장찻골다리라고도 불렀으며, 장통교를 줄여서 장교(長橋)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다리 서쪽 기둥에 '신미개조(辛未改造)'와 '기해개조(己亥改造)'의 8자가 새겨져 있어 두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는데 그 글씨는 확인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광교>
옛 멋과 미래와의 만남을 상징하는 다리로 광통방에 있던 크고 넓은 다리라는 의미로 광교라고 했다는데 현재 광교 사거리가 이 위치에 해당된답니다.



<광통교>
지금 서린동 124번지 부근에 있었던 다리인데 광통방에 있는 큰 다리였으므로 처음에는 대광통교라 하였다. 특히 옛부터 서울에서는 큰 다리로 알려져 정월 대보름이 되면 도성의 많은 남녀가 이 곳에 모여 답교(踏橋)놀이를 하던 곳으로 유명하였다고 합니다.
이 다리는 조선 태종 이방원이 태조 이성계가 돌아가시자 1409년 지금의 정동에 있던 계모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을 사대문 밖인 지금의 정릉으로 옮기고 정동에 남아있던 강씨무덤의 난간 기둥과 가로대를 뽑아다가 이 다리의 난간기둥과 가로대로 사용을 하였다고 합니다.


<광통교의 난간>
복원된 광통교에는 본래의 나간기둥이 몇 개 있는데 아마도 혹시 그것들이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에서 가져온 것은 아닐까 생각을 했는데 어느 글에서 보니 경희궁에 딱 한개가 남아있다고 하네요.



<광통교의 당초무늬 돌>
광통교 아래를 보면 사각의 돌 교각이 있는데 모두 마름모꼴로 설치를 하여 물흐름을 거슬리지 않도록 되어 있고 庚辰地平, 乙巳大x, 癸巳更x 등의 글자가 나오는데 개보수를 한 기록이 아닌지?
그리고 양쪽의 축대를 이루는 돌가운데 본래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돌에는 매우 정교한 당초(唐草)로 보이는 무늬가 새겨져 있습니다.



<석수>
다리는 지키는 것으로 보이는 석수도 옛것으로 보이는데 그 모양이 무섭다기보다는 정감이 가는 표정입니다.



<모전교>
길모퉁이에 자리하고 있는 과일을 파는 과전(果廛)을 '모전[隅廛]'’이라고 불렀다는데, 이 다리가 바로 그 모전 부근에 있었으므로 그렇게 이름하였다 합니다.
서린동에서 무교동으로 통하는 현 서린호텔 동쪽 입구에 있던 다리로 부근에 토산 과일을 파는 모전(毛廛)이 있어서 ‘모전다리’즉 모전교, 모교라고도 불렸다고요.
원래는 태종 12년(1412) 종묘입구 서쪽의 개천을 석축(石築)으로 방축하고 동쪽을 목작방축(木作防築)할 때 석교로 조성하였고 당시는 신화방동구교라 불렀으나 영조 연간(年間)에 작성된 〈도성삼군문분계지도(都城三軍分界之圖)에는 모전교로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청계천의 수원>
한강에서 끌어들인 물은 이곳에서 분수로 솟아 청계천으로 흐르게 되어 있다는데 분수는 작동이 안되고 있었습니다.
이 너머의 광장에는 준공식의 무대준비와 의자를 배열하고 있었고, 그 무대에서는 공연 팀이 리허설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전에 산에서 다친 무릎에 통증이 와서 다산교에서 서울 숲에 이르는 코스는 둘러보지 못했는데 방문객이 좀 줄어들면 그 쪽을 둘러보기로 하고 오늘의 청계천 다리보기를 마칩니다.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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