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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보길도 (050606) 고산 윤선도...

2005년 6월 6일, 아침 일찍 땅끝에서 아침식사를 대충 처리하고 보길도로 오는 카페리에 오릅니다.
배를 탈때면 언제나 조금 설레이고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 것같아 이쪽 저쪽 바다를 둘러보곤 하지만 처음 가는 보길도의 뱃길이라 그런지 더 설레이는것 같습니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마눌님도 괜히 이쪽 저쪽을 두리번 거리며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니 조금은 들뜬 모양이고... 그렇습니다. 바다위의 배는 사람을 들뜨게 하는 뭐가 있는 모양입니다.
땅끝의 사자봉이 멀어지면서 좌측으로 오는 듯이 멀어지는 섬이 있을뿐 멋있는 경치도 없는데...

<넙도항 앞의 섬>
넙도로 가는 뱃길은 경지정리가 잘 되어진 평야처럼 양식장의 부표가 질서 정연하게 도열해 있는 사이로 나 있고 양식장에는 이른 아침인데도 미역으로 보이는 것을 건져 올리는 어부들이 바쁩니다.
얼마쯤 지나자 배는 속도를 줄이며 넙도 항으로 들어 가는데 그 앞에 조그만 섬이 우리를 반깁니다.


<넙도항>
배는 연무가 옅게 깔려있는 넙도의 부두에 꽁무니 대고 알을 낳듯이 봉고차 하나를 떨구어 주고 다시 보길도 뱃길로 접어 들고 배 안은 선적된 차량의 머리방향을 돌리느라 갑자기 바빠집니다.


<청별항>
앞의 양쪽에 섬이 보이고 그 사이에 다리를 공사를 하는지 교각이 몇 개 설치되어 있는데 승무원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이쪽은 보길도고 저쪽은 노화도랍니다.
뱃머리를 우측으로 돌리는데 저기 보이는 부두가 청별항이라구요.
하선을 하자 카페리 매표소에 가서 보길도의 관광안내도 하나를 얻어 살펴보고는 일정을 짭니다.

<세연정 조감도>
먼저 부용동의 세연정을 찾아갑니다.
입장권을 사면서 매표원에게 세연정에 대한 관광자료가 없느냐니까 없답니다.
하다못해 내부 구조나 배치도나 이런것도 없느냐니까 없다면서 저기 안내판을 보라네요.
여기의 주인공인 고산 윤선도님이 마눌님의 13대조 할아버님이라 자세히 설명을 해줘서 점수 좀 따볼까 했더니......쪕~
이곳 부용동은 조선의 시인 고산 윤선도선생이 51세 때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들어와 85세로 돌아가실 때까지 7차례 드나들며 13년간을 살면서 어부사시사 40수와 수십편의 한시를 창작한 곳이랍니다.


<입구에서 본 세연지>
세연정에 들어가기 전에 부용지에서 흘러나오는 물가로 가서 부용지쪽을 바라봅니다.


<판석보>
저위에 있는 조감도의 6번에 해당하는 판석보입니다.
판석을 이용하여 보를 막았다고 '판석보'라고 하는 모양인데 이 판석보로 인하여 세연지가 형성되고 있었습니다.
판석보를 건너서 산으로 나 있는 길을 올라가 조감도의 9번에 있는 옥소대를 찾아 올라가는데 바위덩어리 하나가 놓여 있어 그냥 내려옵니다.

<세연지>
판석보를 건너서 보는 세연지의 모습입니다.
자유롭게 형성된 연못 가운데에 둥근 섬을 조성하고 그위에는 나무 한 그루가 완전 자유형으로 자라고 있으며 연못 뒤로는 산위에 있는 옥소대를 향하여 활을 쏘았다는 사투암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못이 그러하지만 여기의 물도 탁하기만 한데 그래도 흥이 났는지 궁굼하고요.
다만 그 분이 계실때는 맑은 물이 항상 흘러 들어와 맑은 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을 해봅니다.

<세연정>
세연정 건너편에서 계연을 따라 가면서 세연정의 11시 방향에서 담아봅니다.


<세연정>
13방향에서 담은 그림입니다.

<세연정>
조금 더 돌아 두시 부근의 방향에서 잡은 것인데요 가운데 앞이 위로 치솟은 바위가 조감도 4번의 사투암으로 보입니다.
사투암은 연못쪽 부분이 들려진 모습으로 그 부분에 발을 딛고 조감도의 9번인 옥소대쪽에 있는 과녘을 향하여 활을 쏘았던 바위라고 합니다.

<혹약암>
계담에 있는 칠암 중의 하나로 역경의 건(乾)에 나오는 혹약재연(惑躍在淵)이란 효사(爻辭)에서 따온 말로 "뛸 듯 하면서 아직 뛰지 않고 못에 있다"는 뜻이라는데 조감도의 7번에 해당합닌다.
즉 혹약암은 마치 힘차게 뛰어갈 것 같은 큰 황소의 모습을 닮은 바위를 말하는 것이라고요.

<인공연못>
세연정의 서쪽에 있는 인공연못으로 회수담의 수입구를 통해 계담에서 물을 들어오도록 되어있다는데 계담 쪽의 인공섬은 원형인데 인공지에 있는 섬은 장방형 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인공연못은 사각으로 조성하고 가운데 섬은 둥굴게 하여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형식을 취하는 것과는 대조적입니다.

<회수담>
조감도의 3번에 해당하는 회수담입니다.
회수담(回水潭)은 세연정 동쪽의 축단 밑의 계담에서 인공연못으로 흘러드는 터널식 수입구(水入口)가 있는데 계담쪽에서 들어오는 수구는 5개인데 인공연못으로 나오는 수구는 3개로 五入三出이라고 하는데 들어오고 나가는 수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만든 구조랍니다.

<세연정>
인공연못의 건너편에서 담은 세연정입니다.

<동대>
조감도의 1번에 해당하는 것으로 세연정에서 바라보아 오른쪽 판석보 옆에 위치해 있는데 어부사시사가 불리워지면 여러 사람이 어울려 군무를 즐겼던 곳이랍니다.


<서대>
조감도의 2번에 해당하는 것으로 현재는 나선형으로 세단이 남아 있으며 동대와 대칭을 이루고 있으며 춤을 추며 돌면 정상에 오르도록 나선형 계단으로 되어 있답니다.
고산 윤선도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을 위하여 검색을 해봅니다.
<고산 윤선도(1587, 선조20∼1671, 현종12) 선생은 조선중기에 호남이 낳은 대시인(大詩人)이며, 조선조 시조문학을 마지막 장식한 대가로 알려진 인물이다.
선생은 학문만이 아니고 철학을 위시해서 경사서 제자백가(經史書 諸子百家)에 통달하여 정치, 학문, 예술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고 천문, 음양지리, 복서, 의약 등 다방면에 통달하셨으며, 원림경영과 간척사업을 하여 오늘날까지 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조문학을 으뜸으로 꼽는다. 해남 육현(六賢)의 한 분으로서 향현사(鄕賢祠)인 해촌서원(海村書院:해남읍 해리 소재)에 배향된 선생은 전란과당쟁이 소용돌이치는 격랑의 사회현실 속에서도 강직한 성품의 선비로 조선시대의손꼽히는 지성이셨다. 정치의 중심에서 나랏일을 맡았을 때는 정성을 다하여 국가경영의 대도를 역설하셨고, 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 세차례에 걸쳐 십수년의 유배생활을 하시는등 유배와 출사, 은둔으로 이어져 있지만, 그 근본은 오로지 나라를 위하는 정신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를 잘 형상화하여 국문학의 비조로서 우리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신 분이다. 한시는 물론이고 국문시가는 값진 국문학의 보배이다.>


<망끝 전망대>
세연정에서 나와 동천석실, 곡수당터, 낙선재터가 있는 곳으로 갔다가 마눌님의 배려(?)로 그냥 돌려 해안도로를 따라 망끝전망대로 향합니다.
시계가 좋지 않아 바로 앞에 있는 섬 두개만 보일뿐 안내판에 나와있는 제주도, 추자도는 생각지도 못합니다.


<망끝에서 마눌님과>
그래도 왔으니 증명사진은 하나 담고요.



<선창리>
그 건너로 보이는 선창리 쪽 풍경도 담아봅니다.


<공룡알해변과 뾰족산>
망끝에서 공룡알해변이 있는 동네로 옵니다.
공룡알 화석을 발견한 장소인가 보다 했는데 바닷가에 있는 돌이 공룡알을 닮았다고 그런 이름을 붙인 모양인데 안내판의 경고가 대단합니다.
<이곳은 해상국립공원입니다. 여기에 있는 깻돌은 보길도의 관광자원이며 천연기념물로서 보호조치를 하고 있습니다. 작은돌 하나라도 가져가다 적발시는 범칙금 300만원이하와 구속조치를 하고 있으니 이점 이해하시고 협조하여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2005년 4월 국립해상관리공단이사장/보옥리주민일동>


<송시열 선생의 글씐바위>
보옥리 공룡알해변을 나와 송시열 선생의 글씐바위를 보러 섬 반대편 백도리로 향합니다.
가끔 교행 공간을 만들어 놓은 좁은 길을 따라 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바위를 찾아 갑니다.
저기 어느 부부가 서 있는 뒤편의 검은 부분이 바로 우암 송시열 선생의 암각시문이랍니다.


<송시열선생의 암각시>
바위에 가보니 위 그림처럼 탁본을 떠서 그런지 알아 볼 수가 없고...
탁본을 뜨고 원상복구를 안해놓은 넘들도 그렇지만 이렇게 방치하고 있는 관리자들에게도 욕이 나옵니다.
이 글귀를 구경하러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는데...
다행히 입구에 대리석으로 암각시문을 새겨 놨습니다.
팔십삼세옹(八十三歲翁) 창파만리중(蒼波萬里中)
여든셋 늙은몸이, 푸른바다 한가운데 있구나.
일언호대죄(一言胡大罪) 삼출역운궁(三黜亦云窮)
한마디 말이 무슨 큰 죄이길래, 세번이나 쫓겨나니 궁한 운수로다.
북극공첨일(北極空瞻日) 남명단신풍(南溟但信風)
북녘끝 부질없이 님을 우러르며, 남녘바다 바람 잦기만 기다리네.
초구구은재(貂구舊恩在) 감격읍고충(感激泣孤衷)
담비 갖옷 내리신 옛 은혜에, 감격하여 외로운 충정으로 흐느끼네.
(구=求 아래에 衣를 붙인 것으로 갖(모피)구자임)



<기념촬영>
글씐바위 아래를 바다를 배경으로 마눌님과 또 한 컷...


<청별항>
글씐바위에서 돌아와 완도로 가는 배를 타고 보길도를 떠납니다.
배의 프로펠러에서 나온 포말이 바다에 번지며 청별항이 차츰 멀어져 가고 고산 윤선도선생의 오우가를 생각해봅니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水石)과 송죽(松竹)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긔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