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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상하이 (050707) 그리고 임시정부청사

2005년 7월 7일, 한건산(한국건설산악회)의 특별 산행으로 중국의 안휘성에 있는 황산으로 떠납니다.
상하이의 푸동공항에 도착, 황산으로 가는 Flight Schedule에 여유가 있어 상해 시내로 들어가 일제 강점기에 프랑스 조계지에 있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청사를 찾아봅니다.

 

 
<대한민국임시정부유적지>
공항에서 시내로 오는 버스안에서 조선족 동포인 현지 가이드가 한시간 반정도의 시간동안 중국과 상해에 대해 설명을 해줍니다.
임시정부청사가 위치한 동네는 옛날 프랑스 조계지라는데 좁은 골목에 위치하고 있고 길쪽에 중국에서 관리하고 있는 임시정부유적지 관리사무소가 있습니다.
가이드가 요금을 지불하여 입장료는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꽤 되는 걸로 기억이 되는데 일단 15분 정도 비디오 테잎을 통하여 임시정부에 대한 소개를 봅니다.

 

 
<임시정부관리사무소 앞에서>
우리 임시정부유적지를 중국관리들이 관리하며 수익사업을 하고 있는데 기분이 좀 그렇습니다.
나중에 물어보니 여기에 있는 자료들은 광복회인가 하는 국내 단체에서 지원을 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모양입니다.
시내로 들어오는 동안 현지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니 일부는 알고 있는 사항이고 일부는 우리와 직접 관련이 없지만 수첩을 꺼내 메모도 합니다.
그 중에서 푸동공항에서 상해까지 운행하는 30Km의 자기부상열차에 대한 얘기는 처음 듣는데 조금은 충격적입니다.
우리는 이미 엑스포박람회 때 기본 기술을 선 보였지만 그 후 별 소식이 없는데...
물론 중국은 독일의 기술로 설치를 했고 30Km를 약 8분에 주파한다고 하네요.
30Km의 자기부상열차를 건설하는데 약 1조3000억이 소요되었답니다.

 
<임시정부청사 현관>
관리소를 나와 좁을 골목으로 들어가 임시정부로 사용하던 건물로 들어갑니다.
현관에 들어서니 색이 누렇게 바랜 태극기 두기가 교차되어 벽에 세워져 있는데 나도 모르게 카메라를 꺼내니 우리를 감시(?)하던 중국관리인이 사진을 못 찍게 하는데 화가 많이 나지만 워쩝니까...

 
<김구선생 집무실>
현관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니 식당으로 보이는 홀이 있고 집기가 있습니다.
한번둘러보고 위층으로 올라가니 김구선생의 집무실이 있습니다.
카메라를 꺼내 감시인이 눈치 채지 못하도록 셔터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회전LCD를 사용하여 쪽은 팔리지만 몰래 사진을 담습니다.

 

 
<도산선생의 글씨?>
집무실을 나와 앞에 있는 방으로 가니 벽면에 도산선생의 액자가 걸려 있습니다.

 
<대한독립선언서>
그 다음 방으로 가니 "요인숙소'인데 침대가 놓여 있고 그방을 돌아가니 대한독립선언서가 벽면에 걸려 있는데 접혔던 흔적이 보입니다.
(오등은 자에 아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상해임시정부 연혁>
그 옆에는 상해임시정부의 연혁이 걸려 있습니다.
3.1운동 이후 서울, 노령, 상해 등 각지에서 수립된 임시정부는 전민족적 여망과 국제적 승인 획득을 위해 1919년 9월 단일 임시정부를 상해에 수립을 했답니다.
이후 '대한민국임시헌법' 등의 법규를 제정하고 군사, 외교, 재정, 교육, 홍보, 내정 등에 대한 정책의 수립, 시행 및 독립운동의 장기화에 대비하고 민족역량 증대를 위한 한인2세의 교육가 둑립운동의 홍보를 했으며 아울러 각종 국제회의에서 한국독립의 당위성과 일제침략의 부당성을 주장하고 체계적인 외교활동을 전개 하였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약사>
1932년 한인애국단의 이봉창, 윤봉길 의사의 의거 이후 가중되는 일제의 탄압과 임시정부요인에 대한 검거를 피해 상해를 떠나 중국 각지를 전전하다가 1940년 중경에 정착을 하였답니다.
중경시기의 임시정부는 당, 정, 군의 체계를 갖춘 체계화 되었으며 1940년 9월 17일 창설된 한국광복군은 대일, 대독 선전포고를 하고 당당히 연합군의 일원으로 대일 항전에 참여를 하였고요.

 

 
<임시정부의 요인 사진 등>
임시정부 요인등의 사진은 그 당시 사진기술에 비해 너무 선명한데 아마도 새로 손을 본것 같았습니다.
임시정부는 광복을 맞이하는 회후의 순간까지 미국의 OSS와 국내진입작전을 준비하는 등 독립쟁취를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하였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우리 역사상 최초의 민주공화정부로서 광복을 맞이하여 환국할 때까지 항일독립운동의 최고 대표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며 함흑기 민족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답니다.
사실 독립운동, 광복군, 항일투쟁, 임시정부 등의 얘기는 많이 들었고 당연한 것으로 머리에 색인이 되어 있지만 실제로 언제 광복이 된다는 기약도 없고 엄청난 탄압을 받고 쫓겨다니면서 그런 일을 한다는게 얼마나 어려웠고 내가 그 당시에 있었으면 과연 이 분들과 같이 목숨을 내놓고 항일운동을 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면서 더욱 숙연해집니다. 
 
<작포로의 식당가>
임시정부청사를 나와 저녁식사를 하러 가는데 현지 가이드가 멀리 있는곳에 있는 한국식당으로 간답니다.
여러사람의 의견을 물어 현지 음식을 맛보기로 하여 예약을 취소하고 "작포로"에 있는 현지 식당으로 갑니다.
음식은 너무 기름지고 술은 향이 있어 별로고 옆 테이블의 현지 손님들이 너무 떠들어 귀가 멍멍~
몇년 전 북경에서는 이렇지 않았던것으로 기억이 되었는데......

 
<외탄의 야경>
식사 후, 예전에 영국과 미국의 공동조계지 였던 외탄으로 옮겨 야경을 봅니다.
그 당시에 영국, 미국넘들이 조계의 입구에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라는 현판을 세워놓을 정도로 중국인들을 멸시하였답니다.

 

 
<외탄: 왼쪽-영국넘 건축물, 오른쪽-중국인 건축물>
또한 중국 건축가가 35층 규모의 건축물을 지으려고 허가를 요청했더니 조계를 관리하던 영국넘들은 '감히 중국넘이 어떻게 영국사람들 보다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있느냐고 허락을 해주지 않아 영국건축물(왼쪽) 보다 0.5m 낮은 25층의 건물(오른쪽)로 지었다나요.

 
<푸동의 '동방명주' 빌딩>
황포강 건너의 푸동<황포강의 동쪽이라서 푸동(포동)>은 새로운 경제중심지를 상징하듯 고층빌딩에 야간 조명으로 화려하게 화장을 하고 있습니다.
버스로 돌아오는 지하도에는 각종 불구인 많은 사람들이 구걸을 하고 있습니다.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으니 천원짜리 지폐가 몇 개 있어 슬그머니 하나씩 넣어주고 얼른 자리를 뜹니다.

 
<푸동공항>
황산으로 가기위해 다시 푸동공항으로 돌아옵니다.
보안검색대를 통과하는데 황산에서 마시려고 면세점에서 갖고온 술 몇 병 때문에 트러블이 생깁니다.
술병은 기내로 hand carry가 되지 않는 다나요.
결국은 시간이 늦어 화물로도 못 보내고 푸동공항에 맡겼다가 나올 때 찾았고요.

 

<동방항공호텔>
마지막날 상해에서 묶었던 호텔입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