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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남양성모성지1 (050524)

2005년 5월 24일, 아주 화창한 날씨입니다.
몇 번 다녀온 안식구의 성화로 경기도 화성군 남양에 있는 남양성모성지를 찾아봅니다.
남양에 도착하자 높이 서있는 성지 알림판이 눈에 들어와 쉽게 찾아 갈 수 있었고요.
로사리오교(橋)를 지나 성지로 들어 갑니다.


<남양성모성지 안내표식>
남양성모성지는 병인년 대박해 때 이름없는 순교자들이 피흘리며 죽어간 순교지이랍니다.
이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동정아리아 축일에 성모님께 봉헌되어 한국 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성모성지로 공식 선포를 하였다구요.


<로사리오성모동산 입구>
다리를 건너 성지에 들어서면 로사리오성모동산의 입구에 성모자상이 있고 그 옆에는 '남양순교성지입구'를 알리는 원형맷돌의 안내석이 있습니다.
이 성지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순교를 하였는데 치명일기나 증언록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사람은 충청도 내포사람 김 필립보(1818~1868), 박 마리아(1818~1868) 부부와 용인 덧옥골 사람인 정 필립보(?~1867), 수원 걸매리 사람 김충서 토마(1830~1868)의 네 사람 뿐이고 많은 순교자들은 이름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합니다.


<남양순교지 입구 표석>
경내에 들어가니 잘 정돈된 경내에는 벌써 많은 참배객들이 있었고 성당에 들어가지 못한 많은 교우들이 성당 밖에서 영성체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하게 때문에 조선 시대에 많은 교인들이 찾아 들었을 것으로 추측이 되고 있답니다.


<초봉헌실>
초 봉헌실에는 많은 촛불들이 봉헌되어 있어 불빛이 아름답습니다.
인근의 백학, 활촌 등 많은 교유춘이 인군에 형성돼 있었고 옹기를 구워 팔던 백학 교우촌에서는 지금도 가마터와 그릇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안양 수리산, 양지 골배마실, 안성 미리내, 진천 배티, 아산 걸매리 등과 걸어서 하루 거리에 위치해 박해 당시에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었던 곳이라고 합니다.

<병인대박해 표석>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 옆에 대형 맷돌에 새겨진 병인대박해의 표석과 샘터가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성모성지란 교회가 공식적으로 성모 성지를 선포한 곳을 의미하며 현재 전 세계에 1729곳이 있는데 그 중 성모가 발현한 곳은 손에 꼽을 정도이며 아시아에서는 일본과 인도네시아에 각각 두 곳, 중국과 말레이시아에 각각 한 곳이 있고, 베트남ㅇ에 네 곳, 필리핀과 인도에는 각각 여섯 곳이 있답니다.

<성체조배실>
그 옆에는 성체조배실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돌제단과 십자고상>
넓은 잔디밭의 건너편으로 돌제단이 있고 그 뒤에 대십자가 조성되어 있는데 야외미사 때를 제외하고는 잔디밭 출입을 하지 말라는 표식이 있어 멀리서 담아 봅니다.

<예수님상>


<교황 요한 바오로2세의 축복>
성당앞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이 곳 성모성지와 순례자에게 주는 축복의 메시지가 돌에 새겨 있습니다.
"본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ㅡㄴ 한국 전추교회의 남양성모성지와 이 성지를 순례ㅏ는 모든 이에게 사도적 축복을 내립니다.
모두가 성모 마리아를 사랑하며 평화를 취한 묵주의 기도를 지속적으로 바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탄생 2002년 5월 성모 성월에 바티칸에서 교화 요한 바오르 2세. 서명"


<박지환 요한 신부님 상>
그옆에는 '박지환(요한)신부님'의 흉상이 있는데 1982년에 잊혀져 있던 이곳 병인박해 순교지를 발굴하고 남양순교지로 개발하다가 1985년 3월 29일 선종을 하였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습니다.


<항아리>
경당앞에는 항아리가 많이 놓여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옹기쟁이는 백정보다도 더 천한 신분인데 순교자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기의 신분과 재산, 고향 그리고 가족끼리도 흩어지면서까지 사람대접을 못 받는 옹기쟁이로 살았답니다.
그와 더불어 항아리를 팔러 다닐며 전교와 교우들의 정보를 교환하는 수단이기도 했다고요.


<과달루페 성모상>
1531년 12월 9일, 멕시코 테페약 언덕에서 성모님께스는 인디언의 모습으로 요한 디에고에게 발현을 하셨고 이를 보고했으나 믿지 않아 다음 발현 때 요한은 주교를 납득시킬 수 있는 징표를 주십사 청하였고 성모님은 데페약 산 정상에 올라가 장미꽃을 따다 주교에게 주라고 하셨답니다.
추운 12월에 돌산에 장미가 있을 때가 아니지만 정상에 올라가니 향기로운 장미가 가득 피어 장미를 꺽어 자신의 틸마(망또의 일종)에 담아가지고 주교에게 보여 드렸더니 장미꽃이 쏟아지면서 효한의 틸마에 테페약 언덕에 나타나셨던 그 성모님의 모습이 새겨 나왔져 나왔답니다.
그분은 스스로 '돌뱀의 머리를 짓밟다.'라는 뜻을 가진 '과달루페의 여왕 동정녀 마리아'로 불리기를 원하셨고, 지금 이 성화는 테페약 산 정상에 세워진 성당에 모셔져 있답니다.


<오상의 비오 신부>
비오 신부님은 1918년 10울 20일 주님의 오상(삽자가의 다섯상처) 즉 두 손, 두 발과 창에 찔린 옆구리 상처를 교회사에서 최초로 받은 사제이며 이 후 50년 동안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신 분이랍니다.


<경당>
미사가 끝난 경당안에는 십자고상을 향해 조용히 무릅을 꿇고 기도를 드리는 자매님의 모습이 평화로워 보입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