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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창덕궁의 옥류천 (050519) 입장료 수입을 위한 고궁개방?

2005년 5월 19일, 창덕궁의 옥류천 계곡을 돌아봅니다.
입장을 하는데 '옥류천지역관람'이라는 패찰이 달린 목걸이와 일반관람객에게는 제공하지 않은 창덕궁 안내 팜플릿을 주고 개량한복을 입은 안내원의 안내를 받습니다.
특별관람은 일반관람코스에 더 하여 옥류천지역을 관람하는 것으로 알았는데 일반관람코스의 궁궐부분은 스킵을 하고 바로 후원의 부용지 지역으로 들어가네요.
지난번 관람시에 제대로 관찰을 못했던 대조전 후원 및 낙선재 고건물을 다시 둘러보고 사진으로 담으려고 했는데......ㅠ.ㅠ


<옥류천 특별관람구역 입구>
부용지의 잉어조각, 어수문 문루의 용조각 등을 살펴보고 지난번에 대충 넘어갔던 유적들을 관심을 갖고 둘러봅니다.
부용지를 조성하기 이전에 있었던 우물4기의 기록을 비로 남겼다는 '사정기비각', 인조 때 초가지붕으로 지어 '취향정'으로 명명 되었다가 가뭄이 심할 때 숙종이 이곳에 들르자 비가 왔다고 해서 지붕을 기와로 바꾸고 이름도 바꾸었다는 '회우정', 비가 개인 날의 달빛과 바람을 즐긴다는 이름처럼 고매한 선비의 풍모가 깃들어 있다는 '제월광풍관', 원래 임금의 어진과 어필을 수장하였다가 정조 때부터 왕비들이 백성에게 모범을 보이기 위해 친히 누에를 치던 양잠실로 사용했다는 서향각 등을 먼 발치에서나마 줌으로 땡겨봅니다.
기오헌, 애련지, 연경당 등으로 들어가는 금마문, 불노문을 옆으로 지나치며 차량차단기로 통제를 하고 있는 옥류천관람코스의 입구로 들어가는데 나누어준 관람패찰을 확인합니다.


<반도지와 관람정>
차량차단기를 넘어서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으로 반도지가 모습을 들어냅니다.
반도지는 연못의 형태가 한반도를 닮아서 그렇게 이름을 붙인 모양인데 일제의 강점기에 원형이 많이 훼손되어 다시 발굴조사를 하여 연못과 정자를 복원 하였다고 합네요.
동궐도에는 관람정이 보이지 않는다는데 창덕궁 매표소에 그려져 있는 동궐도를 살펴보니 여기에도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관람정은 아주 특이하게 합죽선을 편 모양이며 주초인 두리(둥근)돌기둥 6개중 4개가 물에 담그고 있어 두개를 물에 담그고 있는 부용정과 옆에 있는 존덕정과 일맥 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석교>
관람정과 존덕정 사이에 있는 아치형의 조그만 돌다리가 있는데 잘 잡혀진 조형과 홍예가 심상하지 않습니다.


<존덕정>
1644년 인조 때 창건한 정자로 처음에는 육면정이라고 했다가 존덕정으로 개명 되었다는데 이 정자 역시 특이한 건축양식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붕이 처마에 잇대어 두개로 이루어져 있어 마치 이중지붕과 같이 화려한 의장이 돋보이네요.
이 존덕정 역시 주초 돌기둥 두개를 존덕지(반월지)에 담그고 있습니다.


<존덕정내부의 정조 친필 게판>
존덕정 내부에는 정조의 친필로 새겼다는 게판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자'이 걸려있는데 검색을 해보니 <백성을 만천에 비유하고, 그 위에 하나씩 담겨 비치는 명월을 ‘태극이요, 군주인 나’라고 하여 모든 백성들이 주인이라는 자신이 추구하고 실현시킬 목표라는 것>을 뜻하는 글로서 백성을 사랑하는 정조의 마음이 엿보인답니다.
아울러 <정조는 만천에 비치는 밝은 달이 되기 위해 선왕 영조 때부터 시작된 궁성 밖 행차뿐만 아니라 역대 왕릉 참배를 구실로 도성 밖으로 나와 많은 백성들을 직접 만나는 기회를 만들어 100회 이상을 기록한 행차는 단순한 참배만이 아니라 일반 백성들의 민원을 접수하는 기회로도 활용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존덕정의 천정에는 궁궐의 정전과 비슷하게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다투고 있습니다.


<폄우사>
존덕정에서 바로 보이는 폄우사는 맞배지붕이고 2칸 짜리 온돌방 하나와 마루가 달려있습니다.
‘폄우’는 어리석음을 고쳐 경계한다는 뜻으로 이 곳은 정조의 아들 효명세자(익종)가 즐겨 책을 읽던 곳이었다네요.
이 집은 동궐도 그려져 있다는데 1830년 이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측이 되며 낮은 돌계단을 오르면 박석이 걸음에 맞춰 박혀있는데 그 돌들이 왕의 체통에 걸맞는 위엄있는 걸음이 되도록 배치가 되어 있다고 안내원이 설명을 합니다.


<승재정>
폄우사를 지나 언덕을 올라가면 승재정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주변에는 괴석을 몇 군데 배치하여 운치를 더했구요.
출입문이 양쪽으로 되어 있다는데 무더운 여름에 양쪽문을 모두 열면 엄청 시원하겠고요.
승재정을 뒤로 하고 조금 들어가니 연경당의 '농수정'이 담위로 삐죽이 솟아 있습니다.


<숲길>
존덕정을 뒤로 하고 안내원을 따라 취규정으로 가는 길 양편으로는 5월의 숲이 신록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취규정>
옥류천으로 출입하던 왕이 아래쪽의 경치를 감상하며 휴식을 하던 곳이라고요.



<숲길>
취규정에서 옥류천으로 내려가는 좁은 숲길이 아늑합니다.



<취한정>
옥류천 지역에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이 취한정입니다.
하도 푸르러 여름에도 춥다는 의미인지?



<농산정>
마루와 방, 그리고 부엌으로 보이는 일자의 맞배지붕 구조로 일반적인 정자와는 구조가 다릅니다.
참고로 보고 있는 책에 나와 있는 '궁궐도에 그려진 옥류천 지역'이라는 사진에 보니 이 농산정 주변에 담장이 보입니다.
숲과 개울이 있는 자연속의 아담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 여유로움이 느껴집니다.


<농산정의 연가?>
농산정 태극정방향의 길 건너에 있는 화단 경계석의 한 부분이 좀 특이하게 되어있습니다.
덮개석을 들고 보니 안에는 굴뚝으로 보이는 구멍이 뚤려있네요.



<태극정>
인조 14년(1636)에 세운 정자로 처음에는 운영정이라고 하였다가 뒤에 태극정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이 정자를 소재로 정조가 태극정시를 지었다구요. 네모정으로 사방에 문이 달렸었던 것이며 사방둘레에는 평난간을 두르고 네모지붕 중앙에는 탑 모양의 절병통 장식으로 마무리를 하였답니다.



<청의정>
청의정은 앞의 논(왼쪽)에서 지은 볏짚으로 이엉을 엮어 지붕을 올리는데 지금도 그러하답니다.
비록 볏짚으로 올린 지붕이지만 중앙의 높이 솟은 부분에서 처마로 내려오며 부드러운 역 곡선을 취하고 있어 포근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중국의 북경에 있는 천단의 지붕을 연상하게 합니다.

<청의정 기동의 받침돌>
청의정은 다른 정자에 비해 소박하고 갸날퍼 보이지만 네 귀퉁이에 있는 기둥을 바치고 있는 주촛돌은 아주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으로 조각을 하여 멋을 내고 있습니다.



<소요정>
소요암과 너럭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옥류천이 유상곡부를 거쳐 떨어지는 폭포를 감상하던 곳인데 '옛궁궐도'의 그림에는 여기도 좌측으로 담장이 둘러 있습니다.


<어정>
임금이 마시던 약수라는데 자연생태보호(이끼보호)를 위해 출입 통제의 표식이 있어 물 맛은 보지 못했습니다.
샘을 덮고 있는 덮개석의 운치가 돋보입니다.


<너럭바위의 유상곡수와 폭포>
소요암의 너럭바위를 휘감고 흐르는 유상곡수에 임금이 술잔을 띄우면 그 술잔이 자기 앞을 지나기 전에 시를짓고 잔을 드는 '유상곡수연' 풍류를 즐기던 곳이랍니다.
조선후기의 '시회도'에도구비치는 물가에 앉아 술잔을 들이키는 곡주연의 모습이 그려있다구요.


<인조와 숙종의 친필>
인조의 옥류천(玉流川>이라는 친필과 숙종의 오언절구가 새겨져 있다는데 접근을 통제하고 있어 멀리서 사진을 담았는데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부분만 세척을 했는지 다른 부분보다 밝게 보였는데,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보호를 하는게 아닌지?
안내 팜플릿에 오언절구를 써놨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飛 流 三 百 尺 비 류 삼 백 척 (폭포는 삼 백척인데)
遙 落 九 天 來 요 락 구 천 래 (멀리 구천에서 내리고)
看 是 白 虹 起 간 시 백 홍 기 (보고 있으면 흰 무지개 일어)
飜 成 萬 격 雷 번 성 만 격 뢰 (골짜기마다 우뢰소리 가득하네)


<소요정 앞의 돌다리>
소요정에는 돌다리가 하나 놓여 있는데 돌받침은 사각의 돌기둥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마름모로 설치를 하였습니다.
아마도 장마, 또는 우기에 많은 계곡수가 흐를 때에 물의 저항을 줄이기 위한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청심정>
임금이 정사에 지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사용하던 정자라고요.
정자 주변에는 때죽나무가 꽃을 한창 피우고 있었습니다.


<빙옥지>
청심정 앞에 있는 빙옥지랍니다.
커다란 돌을 파서 만든 것인데 거북이 한마리가 엉금 엉금기어 오고 있습니다.
맑은 물을 담아 놓고 정자에 앉아 이 것을 보고 명상을 하고 있는 임금의 모습을 머리에 그려봅니다.


<탐방로 및 유적의 위치>
옥류천 지역의 탐방을 마치고 궁궐부분과 낙선재부분을 다시 보고 싶어 3000원을 주고 다시 입장권을 구입하고 40여분을 기다려 입장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 2002년에는 관람이 되었던 선정전과 대조전의 후원은 그냥 출입금지이고 낙선재도 관람코스에서 제외가 되네요.
안내원에게 왜 그 부분의 관람이 안되느냐고 물었더니 '특별관람코스'는 원래 옥류천 지역만 해당되고 낙선재를 보려면 주말에 관람을 하고 연경당을 보려면 주중에 관람을 해야 하는데 이유가 뭐냐니까 시간이 모자라서 그런다네요.
관람객들이야 시간이 모자랄리 없고 안내원들의 시간이 모자란다는 얘긴인데 관리소측의 사정을 관람객들에게 떠미는 처사로 보입니다.
또한 대조전의 후원은 문화재의 보호를 위해 개방을 하지 않는다는데 문화재 보호를 위해 개별 관광을 하지 않고 안내원과 감시원의 입회하에 관람을 하는데도 문화재가 손상된다면 당연히 이들이 책임을 져야 할 사항이지 관람을 봉쇄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관람이 가능한 창덕궁 전체를 보려면 최소한 3번은 입장을 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비용으로도 1100원에다 시간은 2일~3일을 소비해야 하구요.
고궁 및 릉원의 입장료가 작년에 비해 대폭<고궁(경복궁)의 경우 500원에서 3000원, 창덕궁 2300원에서 3000원, 릉원 300원에서 1000원으로> 올려 놓고 모자라 또 이런 처사를 하는데 화가 납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