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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회룡사 (050519) 이성계의 일화가 배여 있는곳.

2005년 5월 16일, 석탄일 다음 날 도봉산에 오르며 회룡사를 둘러봅니다.
어제 석탄일의 행사가 있었을 터인데도 연등 하나 걸려있지 않았고 한 낮의 경내는 조용하여 깊은 산속에 있는 사찰에 온것과 같은 분위기라 오랜만에 절집의 고요함을 느껴집니다.
안내판 앞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어 있는 등꽃을 비롯하여 경내 곳곳의 화단에 많은 꽃들이 피어 있어 산객의 방문을 소리없이 반기고 있습니다.


<부도>
입구에 있는 연혁을 보니 회룡사는 라 신문왕 1년(681년)에 의상조사가 법성사라는 절로 창건을 하였고 그후 경순왕 때에 동진국사가 재창, 고려 문종 때 혜거국사가 3창, 우왕 때 무학대사가 4창, 조선 인조 때 예순비구니가 5창, 고종 대 대응선사가 6창을 하였고 6.25때 전소된 것을 도존 비구니가 미 8군의 원조품을 받아 큰방을 시작으로 복원을 하였으며 1981년 현 주지인 혜주 비구니가 취임하여 석조관음상을 모시고 범종각을 지어 범종과 사물을 판비(辦備)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안내판 우측의 산비탈에는 비구니인 임보성, 서도준, 배혜주의 부도 세기가 앉아 있습니다.


<취선당>
그러나 회룡사의 홈페이지에 있는 년혁을 보면 위에 무학대사 전의 기록은 1997년 봉선사에서 발행한 '봉선사본말사약지'에만 기록되어 있고 다른 곳에는 기록이 없어 무학대사 이전의 년혁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는 망설여지는 면이 많이 있으며 후대에 세워진 여러 절들이 의상이나 원효, 또는 도선 등을 창건 주로 받아 들이는 것으로 하는 것은 절의 유래가 오래 될 수록 권위가 있다는 사고방식에서 나온 듯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설화당>
회룡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에는 여러가지 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 태종 3년(1403)에 태조가 왕자의 난으로 함흥에서 은거하다가 무학대사의 설득으로 한양성으로 올 때, 타고 있던 수레가 이곳 부근에 이르러 움직이지 않아 무학대사가 회란용하(回鸞란龍賀)를 기원하였더니 비로소 움직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법성사를 회룡사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고,

<개팔자 상팔자>

무학이 1394년에 정도전(鄭道傳)의 미움과 시기를 받아 이곳 토굴에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이 때 태조의 방문을 받았으며 태조는 여기서 며칠을 머물렀고, 이에 절을 짓고는 임금이 환궁한다는 뜻으로 그 이름을 회룡이라 했다는 것이 1881년(고종 18)에 승려 우송(友松)이 쓴 <회룡사중창기>에 전하고 있답니다.
설화당 문앞에 개 두마리가 팔자 좋게 사지를 쭉 뻗고 낮잠을 즐기고 있네요.

<연꽃을 이고 있는 불상>

이와는 연대는 달리하여 함흥에 내려가 있던 태조가 1403년(태종 3)에 환궁한 뒤 이곳에 있던 무학을 찾아 왔으므로 무학대사가 태조의 환궁을 기뻐하여 회룡사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구요.

<범종각>
또 다른 이야기는 1384년(우왕 10)에 이곳 도봉산에서 이성계는 무학대사와 함께 창업성취를 위한 기도를 했는데, 이성계는 지금의 석굴암에서, 무학은 산등성이 가까이 있는 무학골에서 각각 기도를 드렸고 그 뒤 이성계가 동북면병마사 라는 직책을 맡고 요동으로 출전하자 무학은 홀로 남아 작은 절을 짓고 손수 만든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그의 영달을 축원하였으며, 그 뒤 왕위에 오른 이성계가 이곳으로 와서 무학을 찾아보고 절 이름을 회룡사로 고쳤다나요.


<석조관음상>
입구에 서있는 회룡사의 연혁에는 조선 태종 3년(1240) 계미에 태조가 함흥으로 부터 한양으로 환궁하던 도중 되돌아 가려는 것을 무학대사가 이고스로 초치하여 용란가를 들려주어 끝내 환궁하도록 해서 회룡사라고 개칭을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조선 태종 3년이 1240년이라고 되어 있는데 1403년이 아닌가 싶네요.


<극락보전>
회룡사의 이름에 대한 여러가지 유래가 있지만 이 절은 이성계, 무학대사와 어떤 년관이 있던 것은 틀림이 없는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오층석탑>
이 절에 있는 당우들은 최근에 다시 세워진 것으로 보이지만 극락보전 앞에 서있는 오층석탑과 범종각 아래에 있는 석조, 그리고 대웅전앞에 있는 당간지주는 오랜 세월의 연륜이 배어 있어 보입니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 186호인 오층석탑은 단층 기단위에 오층탑신을 올린 3.3m 높이의 석탑으로 지대석과 기단의 상면에는 조각이 되어 있는데 단엽 복판의 연화문이랍니다.



<당간지주>
당은 법회 따위의 의식이 있을 때에, 절의 문 앞에 세우는 기로서 장대 끝에 용 머리를 만들고, 깃발에 불화(佛畫)를 그려 불보살의 위엄을 나타내는 장식 도구랍니다.
당간지주는 이 당을 걸기위한 기둥을 고정시키던 것으로 옛날 사찰에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도록 당을 계양했었다고 하네요.


<대웅전>
대웅전안에는 불상 3구가 모셔져 있는데 다른 절과는 달리 유리로 Box로 보호를 하고 있는데 아마도 불상의 뒤에 탱화가 있는데 이것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 118호인 '회룡사 신중도'이고 이것을 보호하기 위하여 그렇게 해 놓은 모양입니다.


<석조>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17호인 '석조'는 생활에 필요한 물을 저장하는데 사용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사찰의 필수품이었답니다.
이 석조는 224x153x67Cm으로 큰 규모에 속하고 또한 솜씨도 뛰어난 작품이랍니다.


<삼성각>
대웅전 뒤편으로는 삼성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약사전>
회룡사를 나와 등산로를 조금 올라가니 절 안에서는 뵈지 않던 조그만 당우가 나옵니다.
접근이 안되어 사진만 담아 왔는데 '약사전'으로 보입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