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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둘러보기

보물 제 441호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

울산있는 학성공원의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를 둘러봅니다.

<보물 제 441호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전경>

먼저 부도 옆에 서있는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이 부도는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에 세워진 옛 태화사 터에서 발굴한 것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종 모양의 부도이며, 표면에 십이지상을 조각했는데, 부도에 십이지상을 새긴 것은 이것이 유일한 것이라고 합니다.
직사격형의 대석위에 돌종 모양의 탑몸(塔身)을 올려 놓은 형태이며 탑몸의 앞면에 감실을 설치하였고, 그 아래쪽에 짐승의 머리에 사람의 몸을 한 십이지상을 돋을 새김을 했는데 남쪽에 오상(午像)을 북쪽에는 자상(子像)이 새겨있다는 설명과 함께, 1962년 태화동 반달골 산비탈에서 발굴된 것을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보물 제 441호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남쪽>
먼저 남쪽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부도의 중앙부에 사각형의 감실이 제법 깊숙하게 파여 있는데 문화재청의 자료를 보니 이 감실은사리를 넣어 두는 곳이라고 합니다..
안내문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감실 아래의 중앙에는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십이지상으로 보이는 조각이 있는데 안내문의 내용에 따라 중앙에 위치한 것이 말()이라고 생각하고 살펴봅니다.
그 말의 왼쪽에 있는 조각은 식별은 되지 않지만 당연히 뱀()이 겠고, 우측에 있는 조각에서는 양()의 모습을 억지로(?)느껴 봅니다.

<보물 제 441호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동쪽>
동쪽의 모습을 살펴봅니다.
남쪽에는 감실이 있어 나름대로 심심함이 적었는데 동쪽, 북쪽, 서쪽은 돌종의 모습에 하단에만 희미한 조각이 있어 좀 밋밋한 느낌입니다.
동쪽의 가운데에는 두 귀가 뚜렷하게 보이는 토끼()가 자리를 하고 있으니 그 좌측에 있는 것은 호랑이(), 우측에는 용()이겠지만 상으로 식별은 어렵습니다.

<보물 제 441호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북쪽>
북쪽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있는 것은 턱이 뾰족하게 빠진 모양이니 쥐()의 모습이겠고 그 좌측에는 돼지(), 우측에는 소()가 되겠습니다.
역시 좌우의 조각은 모습만으로는 식별하기가 어렵고요.

<보물 제 441호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서쪽>
서쪽의 모습입니다.
가운데 있는 그림의 얼굴 아래쪽을 보면 날카로운 ‘V’자 모양의 부리가 보이는 것을 보니 )모양입니다.
우측(부도에서는 좌측)에 있는 녀석의 머리모습을 보니 원숭이()이로 보이고, 그렇다면 중앙에 있는 것은 닭(酉)이 되겠고, 우측에 있는 것은 식별은 어렵지만 개()가 되겠는데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지 길쭉한 주둥이가 느껴져 개처럼 보입니다.
문화재청의 자료를 발췌하여 옮겨봅니다.
<일반적인 부도들과는 달리 널따란 바닥돌 위에 종 모양의 몸돌이 놓인 간단한 구조로, 바닥돌에는 앞면과 옆면에 가느다란 안상(眼象)이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종 모양을 하고 있는 몸돌은 윗부분에 감실(龕室:불상을 모시는 방) 입구를 만들고, 그 안쪽으로 깊숙이 파놓아 사리를 모셔 두도록 하였다. 감실 입구 아래로는 12지신상을 돌려가며 도드라지게 새겨놓았는데, 머리는 짐승이고 몸은 사람의 모습으로 거의 나체에 가깝다. 12지신은 띠를 나타내는 12동물로, 우리나라에서는 통일신라시대에 능을 보호하기 위한 의도로 조각되어 세워지기 시작하였는데, 이곳에서 처럼 부도에 새겨지는 것은 보기 드문 예이다. 부도를 하나의 묘로 보아 이들을 새겨놓은 것으로 보인다.
종모양의 부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지니며, 수법이나 조각들의 기법들로 미루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 석종형(石鐘形) 부도 중에 가장 오래된 유물일 뿐만 아니라 표면에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조각한 것으로도 유일한 고승(高僧)의 사리탑(舍利塔)이다.
태화사는 신라(新羅) 선덕여왕(善德女王)(632
647, 재위) 때의 창건으로 전하나, 이 부도는 그 뒤 통일신라(統一新羅) 시대(時代)에 이르러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높이는 110cm이다. >
강지니의 세상돌이, ‘태화사지 십이지상 부도’를 둘러보았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