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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 제 43호 금척리 고분군-건천

경주에서 4번국도를 따라 건천으로 가다보면 국도의 양쪽으로 크고 작은 고분50여기가 모여있는 곳이 나오고 그 도로변에는 금척리고분군이라는 교통표지판이 높이 서있습니다.

<금척리 고분군>
고분군에 서있는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금척리 고분군은 사적 제 43호로 50여기의 고분이 있으며 적석목곽분으로 통일신라 이전의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혁거세왕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병든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금자(金尺)를 하늘에서 받았는데 중국에서 이를 탐내므로 여기에 감추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금척리 고분군-국도 동쪽 고분군>

건천에서 경주 방향으로 보이는 국도 동쪽의 고분군 모습입니다.
동쪽의 고분들은 규모가 작고 또한 주변이 경작지로 사용되고 있어 좀 어수선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안내판에 씌여있는 왕족이나 귀족들의 무덤 중에서 귀족들의 무덤이라 규모가 작은 것인지?

<금척리 고분군-국도 서쪽 고분군>
경주에서 건천 방향으로 국도의 서쪽의 고분군 모습입니다.
서쪽은 동쪽에 비해 규모가 크고 거의 완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또한 정비와 관리도 잘 된 상태입니다.

<금척리 고분군-국도 서쪽 고분군>
건천에서 경주 방향으로 국도의 서편 고분군 모습입니다.

이 서쪽은 왕족들의 무덤......?
19524번 국도에 의해 봉토가 훼손된 2기의 구분을 국립박물관에서 발굴 조사를 하였는데 경주식의 적석목곽분 구조이며 금제세환식, 호박옥, 곡옥, 철도 등이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그래서 위의 안내문에 발국조사결과 적석목곽분이라고 표기를 하였나 봅니다.
금척리 고분군에 얽혀져 내려오는 얘기를 검색하여 보니 안내문과는 달리 진평왕 대의 전설로 기술되어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신라 진평왕이 정사(政事)를 보다가 낮에 깜빡 조는데 눈앞에 일곱 무지개가 곱게 나타나더니 금으로 된 황금자 하나를 건네 주고 홀연히 사라졌는데 잠에서 깨어보니 꿈속에서 신선으로 부터 받은 그 황금자가 거짓말처럼 바로 눈앞에 놓여져 있더랍니다.
그 자는 죽은 사람도 그 자로 재면 다시 살아나고, 아픈 사람을 그자로 쓰다듬으면 완치가 되고, 가난한 사람이 소원을 빌면 무엇이든 소원대로 이루어 진다고 하는 신기한 자였는데 그 덕분인지 신라는 날로 번창하였다고요.
그러나 신라에 하늘에서 내린 황금의 자가 있어서 날로 국력이 부강해진다는 소문이 당나라 황제 귀에 들어가게 되었고 그 황제는 신라에 사신을 보내어 그 황금 자를 바치지 아니하면 신라를 침략한다고 협박을 하였답니다.
이에 진평왕은 머리를 싸매고 고심하다가 꾀를 내어 백성들을 시켜 여기에 크고 작은 여러 개의 가짜 왕릉과 같은 무덤을 만들게 하고 그 황금자를 이중의 한곳에 묻어 놓았다네요.
결국 당나라 사신은 이 무덤 저 무덤을 조사하다가 끝내 그 자를 묻힌 무덤을 찾지 못하고 돌아갔으며, 신라 역시 그 금자가 묻힌 무덤을 찾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전해오는 얘기지만 이런 규모의 고분들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은 이 곳도 옛날에는 중요한 역사의 한 무대였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강지니의 세상돌이, 금척리 고분군을 돌아보았습니다.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