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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둘러보기

경주남산 서남산코스 답사 (061119)

2006년 11월 19일, 오늘은 경주 남산의 문화재 답사를 가는 날입니다.
아침 9시 30분에 남산 삼릉주차장에서 집결하기로 되어 있어 새벽 미사를 갔다 와서 8시 30분 경주로 향합니다.
한 시간이면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울산에서 경주로 가는 산업도로가 많이 막히네요.
삼릉 주차장에 도착하니 5분 정도 늦었는데 사람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남산연구소로 들어가니 신청자들이 비가 온다는 예보에 취소를 많이 하고 부부와 아이 둘의 한 가족과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자를 합쳐 6명, 그리고 답사를 리드 할 박택선 선생으로 팀이 이뤄집니다.
삼불사 쪽으로 걸어가는데 좀 궂은 날씨지만 비는 뿌리지 않을 것 같네요.



<보물제63호 배리 석불 입상>
이 석불입상들은 인접된 인방사 터에 흩어져 누워있던 것을 1923년 모아서 이곳 삼불사 부근에 세웠다고 합니다.
그림의 가운데에 있는 본존불과 왼쪽은 대세지보살상 그리고 오른쪽은 관세음보살상인데 삼국의 말기인 7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하네요.
박선생의 안내에 따르면 경주에는 삼국시대의 석불이 네 좌가 있는데 박물관에 두 좌가 모셔있고 이 곳, 그리고 남산에 한 좌가 모셔져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석불들을 보호하기 위해 건물을 세웠는데 지붕을 덮은 뒤로 석불에 습기가 맺히고 있어 이끼가 끼는 등 역효과를 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오래된 사진 한 장을 보여주는데 본존불이 자비로운 미소를 띄고 있는 모습으로, 지붕으로 햇볕이 차단되자 그 미소를 인식하기가 어렵다고 하면서 이 본존불을 조각한 장인은 광선의 역할까지도 염두에 두고 조각을 한 것 같다고 하고요.
그리고 삼국시대와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을 보면 얼굴 모습, 얼굴과 몸 길이의 비례, 그리고 옷의 모습으로 구분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본존불, 관음보살의 단순한 복장과 왼쪽 대세지보살의 화려한 복장과 장신구로 유추해보면 각기 조성시기가 다른 것 같고, 그 시대 상류층의 복장문화도 추측해 볼 수 있답니다.
본존불의 뒤 쪽에는 채색을 했던 흔적이 있다는 설명에 자세히 살펴보니 거뭇하게 얼룩진 부분이 논에 들어옵니다.
또한 대세지보살의 복장을 살펴보니 요즘의 숄과 비슷한 것을 어깨에 걸치고 장식이 많은 복식을 하고 있으며 목에도 화려한 긴 목걸이를 걸치고 있습니다.

<단풍>
석불입상에서 내려오는 길가에 곱게 물든 단풍이 답사 팀을 반겨주는데 공해가 적어서인지 이곳의 단풍은 서울과는 달리 아주 선명합니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석불입상에서 한참 설명을 듣고 있는데 박선생의 전화가 울리고 몇 몇 분이 통일전 주차장에서 이쪽으로 오고 있다고 연락이 옵니다.
조금 있으니 어르신 부부와 3남1녀의 여섯분이 우리와 합류를 했는데, 참가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이미 마감이 되어 무작정 이쪽으로 쫓아오신 분들이라고 합니다.
같이 이동하여 지난주에 둘러본 삼릉에 대한 설명을 듣고 삼릉계곡을 따라 오르니 넓적한 바위 위에 목이 없는 석불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 석조여래좌상은 1964년 동국대학교 학생들이 여기서 조금 떨어진 개울에 묻혀있는 돌에 가사의 끈이 조각되어 있는 흔적을 보고 발굴하여 찾아낸 석불이라고 합니다.
이 불상의 복장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용장사 삼륜대좌불과 함께 복식연구의 종요한 자료가 된다고 합니다.
남산에 많은 불상이 있지만 모두 목이 잘리고 코가 훼손되어 있는데 혹자는 일본사람들의 소행이라고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홈쳐갈지언정 훼손한 사례가 없다고 하며 조선시대의 배불정책의 연장으로 생각되며 또한 석불의 코를 갈아서 먹으면 득남한다는 소문을 일부러 흘려서 불상의 손상을 유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박선생은 설명을 합니다.
이 불상은 몸체가 풍만하고 옷 주름이 유려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안내문에 되어 있는데 우리 박선생은 목에는 우리 조금 전에 보았던 석불입상에는 표현되지 않은 세 줄의 무늬(삼도)가 새겨있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석조여래좌상에서 좌측으로 조금 올라간 곳의 돌기둥에는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오른손은 가슴에 들어올린 자세의 관음보살상이 있습니다. (박선생은 각 불상의 수인에 대해 설명을 해주는데 머리에 입력이 잘 되지 않았습니다.)
박선생은 이 보살상은 이 남산에서 제일 잘 생긴, 요즘 말로 Miss Korea정도 되는 마애불이며, 입술에는 그 당시에 채색한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하는데 자세히 보니 붉은 빛이 지금도 남아있습니다.
또한 이 마애불의 다리 모양이나 옷자락의 모습을 보면 하늘에서 하강하는 보살의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데 해질녘의 석양에 보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고 설명을 합니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등산로를 따라 오르자 선각육존불이 나오는데 이 불상은 두개면의 바위에 세분씩 선각되어 있어 선각육존불이라고 불리는데 위 그림의 우측에 위치한 바위면에는 석가삼존불이 새겨있고 왼쪽의 바위면에는 아미타삼존불이 새겨져 있습니다.



<석가삼존불>
위 그림은 우측에 있는 바위의 석가삼존불인데 가운데 석가불은 그래도 눈에 잘 들어오는데 양쪽의 협시보살들은 잘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양쪽의 협시보살은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인데 어깨에 법의만 거치고 있는 석가불과는 달리 화려한 보관과 복장을 하고 있는 것은 깨달음이 석가부처만 못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설명하면서 웃습니다.
이 선각삼존불의 위족에 올라가니 지붕을 덮었을 때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되는 기둥을 세웠던 흔적과 빗물이 선각불 쪽으로 흐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요즘 건축에서 많이 적용하는 물 끊기를 해 놓았습니다.



<아미타삼존불>
좌측 바위 면에는 아미타불이 연꽃 위에 서있고 좌우의 보살은 웃옷을 벗고 한족 무릎을 세워 꿇어 앉아 양손으로 연꽃을 본존불에 드리고 있는 형상인데 박선생의 설명에 따르면 석가불은 현세불이고 아미타불은 극락세계를 관장하고 있는데 사람이 죽으면 연꽃을 타고 이승에서 저승의 극락으로 가는 것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올라가면서 저게 거북바위라고 하는데 내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더니 박선생이 웃으면서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조금 더 올라가면서도 거북바위라고 두 군데를 알려주는데 금오산의 자라오(鰲)자를 의식해서 거북이를 강조 하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다시 길을 따라 오르자 선각여래좌상이 나옵니다.
선각여래좌상은 중간이 갈라진 두 개의 바위에 걸쳐서 새겨있는데 그 틈 사이에도 조각이 되어 있는 것을 보면 새길 당시에도 바위가 이렇게 갈라져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얼굴 부분은 돋을 새김, 몸은 얕은 돋을 새김을 하였고 나머지는 선각을 한 독특한 수법이라고요.
이 석불이 취하고 있는 수인에 대해 박선생이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지만 너무 어려워 그냥 흘려버리는데, 누구를 닮은 것 같지 않으냐며 학생들은 남희석씨를 닮았다고 한다는데 정말 비슷합니다.



<부부바위>
바다인가 어디에 멀리 나갔다가 오랜만에 돌아온 남편과 아내가 포옹을 하는 모양의 부부바위인데 이 바위를 보고 가신 분들은 금슬이 더욱 좋아질 것이라고 하네요.


<보물제666호 삼릉계곡 석불좌상>
지금 까지 올라오면서 각 유물의 안내문을 보면 어느 곳에는 삼릉계, 어느 곳에는 삼릉계곡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통일을 시켰으면 좋겠습니다.
이 남산에서 그래도 가장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있다는 석불좌상을 만납니다.
좌대 위에 귤, 요쿠르트가 올려져 있고, 사람 손이 닿지 않는 어깨에도 사탕 몇 알도 올려져 있어 모두 좌대 아래로 옮겨 놓고 사진을 담습니다.
박선생은 설명을 하는 도중에 여자분들에게 절대로 성형수술을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며 이 좌불의 눈 아래를 들고 있던 자료로 가리면서 얼굴을 보라고 합니다.
그냥 보았을 때는 위의 모습처럼 뭔가 부자연스럽고 인상이 좋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눈 아래 부분을 가리고 보니 은은한 미소를 띄운 인자한 모습의 얼굴이 드러나네요.
이 좌불의 코와 얼굴부분이 손상이 되었는데 그냥 놔두면 보는 우리 맘속에 본래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을 텐데 일본사람들이 시멘트로 이렇게 개칠을 하여 아주 버려 놓았다고 개탄을 합니다.
전체적인 몸매와 복장, 연화대좌의 안상 등을 보아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답니다.



<보물제666호 삼릉계곡 석불좌상의 깨진 광배>
박선생이 옛날 사진을 보여주면 설명을 하는데 좌불의 뒤에는 원광의 광배가 바치고 있어 훨씬 돋보였는데 1970년대에 이쪽으로 답사를 온 학생들이 억지로 밀어 넘어트리는 바람에 깨졌다고 합니다.
그 설명을 듣고 있으려니 손상된 안타까움에 그 학생들을 인솔해온 교사의 무책임한 방관에 화가 슬그머니 납니다.



<선각마애불?>
석불좌상을 지나 개울을 건너 독경소리가 들려오는 암자(상선암?)로 오르면서 박선생이 좌측 바위 면을 가리키며 부처님을 찾아보라고 합니다.
시력이 좋지 않아서 그런지 잘 보이지 않는데 박선생은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다시 내려가 마음을 깨끗하게 하고 다시 올라와야 한다고 우스개 소리를 합니다.
접사를 하여 보니 위와 같은 선각이 나타납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암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음 마애석가여래좌상으로 향합니다.
마애석가여래좌상은 7m높이로 금오봉을 향하여 앉아 있는데 그 앞에는 두 사람이 기도를 드리고 있고 주변에는 10여명의 사람들이 이 좌상을 보고 있습니다.
사진을 담지만 앞 공간이 너무 좁아 전체를 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박선생이 목소리를 낮춰서 설명을 하는데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가능하면 조용히 하자고하여 조심하고 있는데도 기도하던 아주머니가 왠 소란이냐며 짜증을 내십니다.
이 마애불의 머리는 입체불의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중생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바위 안에 계시던 부처님께서 나오고 있는 모습이며, 여기서 보면 부처께서 앞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지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고개를 숙여 중생들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라고 합니다.
머리 뒤편의 자연석을 광배로 삼았다고 설명이 되어 있네요.


<바둑바위에서>
석가여래좌상을 떠나 옛날 신선들이 모여 앉아 바둑을 두었다는 바둑바위로 올라 잠시 휴식을 취하며 산아래 보이는 나정, 포석정 그리고 앞산에 대한 법흥왕에 얽힌 전설 등에 대해 박선생의 설명을 듣고는 금오산쪽으로 향합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금오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보이는 마애석가여래좌상입니다.
이 위에서 보니 여래가 목을 앞으로 숙여 사바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드러나네요.


<상사바위의 소불상>
상사바위 밑에 조그만 돌이 하나 있는데 소불상이라고 합니다.
이 남산에서 제일 작은 석불이라고 하는데 저기에서 석불의 모습을 연상하기가 쉽지 않네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내가 아는 게 너무 없는 것 같습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원경>
금오산으로 향하는 능선의 전망이 좋은 곳에서 건너편에 보이는 마애석가여래좌상을 담아봅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줌으로 이렇게 땅겨서 보니 석가여래의 온화한 표정이 더 잘 느껴집니다.


<답사팀의 단체사진>
금오산에 정상에 도착하여 답사객 모두 단체사진을 담아봅니다.
e-mail주소를 받은 몇 분에게는 이 사진을 보내드렸는데......
박선생은 탐방팀의 멜주소를 알고 있으니 박선생에게 보내면 전달이 될까 하여 남산연구소의 주소로 사진을 보냈습니다.
금오봉 뒤편에 모여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요기를 하며 소주도 한 잔씩 돌립니다.



<삼릉계곡 마애석가여래좌상>
금오산 정상에서 보니 마애석가여래좌상이 금오산의 정상을 향하고 있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네요.


<억새꽃>
금오산에서 용장곡으로 넘어가는 길가에 억새가 꽃이 바람에 하늘거립니다.
그러고 보니 비가 올 듯이 궂었던 하늘도 푸른 얼굴을 내보이고 있네요.



<보물제 18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
금오봉에서 용장사곡으로 넘어가니 삼층석탑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용장사는 매월당 김시습이 금오신화를 집필하던 절이라고 하는데 지금은 석축 몇 군데만 남아 있어 절터임을 짐작하게 해주고 있답니다.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자연 암반을 다듬어 아래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기둥새김이 있는 위 기단을 설치하여 산 전체를 기단개념으로 도입한 탑이랍니다.



<보물제 186호 용장사곡 삼층석탑>
산을 다 내려와 경주로 가는 차도에서 줌을 땅겨본 용장사곡 삼층석탑입니다.
설명과 같이 높이는 4.5m밖에 되지 않지만, 하늘에 맞닿은 듯이 높게 보여 자연과 잘 조화되게 세운 뛰어난 작품입니다.



<보물제913호 마애여래좌상>
삼층석탑 3층을 내려오니 용장사 터의 암벽에 조각되어 있는 마애여래좌상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조각에는 문외한이지만 그 앞에 서서 여래좌상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참 잘 새겼다는 느낌이 절로 납니다.
두광과 신광은 두 줄로 새겨져 있고, 얼굴은 풍만하고 나선형 머리카락을 하였으며 귀는 목까지 길게 내려와 있습니다.
박선생은 귀가 큰 것을 중생들의 소원을 잘 듣기 위해 그렇다고 설명을 합니다.
목에는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에서 보였던 삼도가 표현되어 있고 옷의 모양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왼쪽 어깨 바깥 부분에는 "태평 2년 8월"에 무엇인가를 하였다는 내용의 글씨가 있다고 하는데 눈에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물제187호 용장사곡 석불좌상>
마애여래좌상의 앞에는 삼륜대좌 위에 모셔진 석불좌상인데 미륵장육상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1930년대에 일본사람들이 복원을 했는데 머리부분은 없습니다.
박선생은 목 부분의 뒤편을 보면 정을 쫓은 자국이 있는데 아마도 인위적으로 좌불의 목을 훼손시킨 증거로 보인다고 합니다.
목에는 세 줄의 삼도가 있고 당당한 모습으로 좌측 어깨의 가사 끈이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는데 이런 저런 양식으로 보아 8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보인답니다.



<삼화령 석불좌대>
하산을 하다가 박선생이 뒤를 보며 우리가 내려온 방향에서 약간 방향을 틀어 2단으로 놓여진 바위를 가리킵니다.
용장골로 내려오기 전 저쪽으로 능선으로 조금 가면 나온다는데 저 바위 위에 석불의 대좌로 쓰인 것으로 보이는 조각이 되어있다고 합니다.
박선생이 오늘의 답사일정이 모두 끝났다고 합니다.
모두 박선생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선생님, 오늘 수고 많으셨습니다."



<끈끈이대나물>
산을 다 내려온 곳에 붉은 색의 꽃이 저만큼 보입니다.
가까이 가보니 끈끈이대나물이 늦둥이 꽃을 피우고 벌, 나비를 부르고 있습니다.
경주로 들어가는 차도에 도착하니 박선생의 동료가 박선생을 pick-up하기 위해 차를 대놓고 있네요.
일행 중 여러 사람이 탈 수 있는 갤로퍼를 갖고 오신 나이 드신 어르신과 꼬맹이를 데리고 온 아빠가 그 차에 동승하여 차를 가지러 가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오늘의 답사에 대한 뒷얘기를 나누며 6시간 반의 경주남산 서남산코스의 답사를 마감합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