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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041127 경복궁(6/6) 연유 공간

--경복궁(5/6)에서 계속-
자경전을 나와 북쪽의 긴 담에 난 문을 통하여 북쪽의 향원정쪽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아마도 이담을 구분으로 연조공간과 원유공간이 나뉘어 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네요.


<연지, 향원정과 취향교>
북쪽에는 연지가 있고 그 가운데에는 향원정이라는 정자가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이 곳이 경복궁의 후원에 해당하는 부분인가 보네요.
1867년 고종황제가 건청궁을 지을때 남쪽에 연못을 파고 인공섬을 만들어 정자를 짖고 향원정이라 했는데 '맑은 연꽃 향기가 널리 퍼진다'는 의미로 지었다구요. 또한 나무로 구름다리를 걸어 취향교라고 이름을 지었는데 이는 '짙은 연꽃 향기에 취한다'는 의미로 지었다니 아마도 연못에는 연꽃으로 가득차 있었던게 아닌가 싶네요.
지금은 취향교가 남쪽으로 설치되어 있는데 1953년까지는 북쪽에 위치하여 건청궁 쪽에서 건널수 있었는데 한국전쟁 때 소실되어 재건하는 과정에서 건청궁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남쪽에 설치했답니다.
또한 다리 동쪽 못가에 담이 있었고 담장에는 인유문과 봉집문이 있어 연못은 한층 더 깊숙하고 아늑한 정취가 있었다나요.


<향원정>
향원정은 2층으로 된 육모정인데 누마루 밑의 구조가지 합치면 3층이고 난간을 외각에 설치하여 아기자기하게 치장을 하였답니다.
임금이 공로가 많은 신하들을 위로하고 군신이 함께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면서 시회를 열었던 장소였답니다.
고종때 지었다고 하는데 그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1456년 세조가 이곳에 취로정을 짖고 연꽃을 심었다는 기록이 있어 일찍부터 경복궁의 후원으로 가꾸어 졌음을 추측할 수 가 있다네요.
이 연못의 수원은 열상진원(차고 맑은 물의 근원)이라는 샘물인데 샘에서 나온물이 둥근수조에 모여 한번 멈추었다가 흠을 타고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 판석 밑으로 숨었다가 다시 남쪽으로 꺽여진 수로를 타고 향원지로 들어온답니다.
향원지를 채운 물은 남쪽 호안에 뚫린 구멍으로 넘쳐 함화당과 집경당 땅밑을 지나 경회루로 흘러간다구요.

<집경당>
교태전의 후원인 아미산 북쪽에는 침전에 속하는 흥복전과 여러 건물들이 한 구역에 모여있어 건청궁과 향원정을 가운데 두고 마주보게 되어 있었으나 건물과 행각들은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이 경복궁을 헐어버릴 때 철거되었다구요.
집경당은 건물주위를 동행각, 북행각과 남행각이 둘러쌓고 있었는데 지금은 서쪽의 함화당과 덩그라니 남아있답니다.

<함화당>
함화당도 집경당과 같이 서행각, 남행각 및 외행각이 있었으나 다 철거되고 덩그라니 남아 있답니다.
함화당과 집경당은 3칸의 복도로 연결되어 왕래를 쉽게 하였는데 지금도 연결되어 있다네요.


<풍기대>

함화당에서 아미산 쪽으로 내려오다 보니 복원공사를 하고 있고 울타리를 치어 그 안에 출입을 통제하고 있는데 남쪽 울타리 사이에 철창이 있어 안을 보니 조그만 석조구조물이 눈에 들어 옵니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을 재는 깃발을 꼽아 놓았던 풍기대라고 하는데 깃대를 꽂는 구멍에는 물이 고이지 않게 배수구를 뚫렸다고 합니다.
며칠뒤에 창경궁에 가보니 거기에도 이와 유사한 풍기대가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풍기대는 여기와 창경궁 두곳뿐이라구요.



<동십자각>
이 건물은 경복궁 내외의 경계와 주변 질서를 유지를 위하여 궁성의 동남쪽 모통이에 세워졌답니다.
석단은 1395년 경복궁을 창건할 때 만든것이며 단상의 누각은 1867년 경복궁의 중건시 세웠다네요.
일제가 조선총독부 건물을 지면서 경복궁의 주요시설물을 파괴할 때 광화문을 옮기고 담장을 헐어 이자리에 혼자서 우뚝 서있다구요.
궁성 서남쪽에 있던 서십자각은 1932년에 일제가 헐어버려 그나마 볼 수 가 없다네요.
건물의 규모는 작으나 공예기법이나 조각, 건축수법이 잘 조화되고 광화문의 좌우 날개 누각으로 위엄을 갖춘 뛰어난 건물 중의 하나로 평가를 하고 있답니다.



<봉인사 사리탑 및 사리장엄구>
광화문 안쪽에서 동십자각 쪽으로 나오다 보면 아담한 석조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보물 제 928인 봉인사 사리탑과 사리장엄구라고 되어 있습니다.
광해군12년(1620) 왕실의 발원으로 왕세자의 수복무강을 기원하기위해 경기도 남양주의 봉인사 부도암에 건조되었는데 일제 때 잉ㄹ본에 반출되어 오사카 시립미술관에 전시되어 오다가 1087년에 소유자인 일본인 이와다센소의 자발적인 기증반환으로 이곳에 복원되었다구요.
'해외에 유출된 문화재는 원소유국에 반환되어야 한다'는 유네스코 협약정신을 잘 대변한 사례라고..
이 탑의 양식은 통일신라시대 이래의 전형적인 팔각당형으로 기단부의 상. 중, 하대석에는 연꽃, 구름, 용, 덩굴무늬 등이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고 탑신의 전면에는 구름속에 용이 생동감있게 표현되어 있답니다. 또한 지붕돌에는 용머리를 양각한 팔각의 귀마루가 유연한 곡선을 이루고 있는 조선 중기의 걸작품이라구요.
사리탑과 함께 일괄기증된 사리함은 국립중앙박물관 전시실에 전시되었고 불사리는 옛 터에 재건된 봉인사의 모형사리탑 속에 안치 되어 있답니다.
---끝---

*'서울의 의미를 찾아서'와 현장안내문을 참조하였습니다.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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