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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070114)-수난당한 문화재들

2007년 1월 14일, 경주 불국사를 들려봅니다.
불국사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너, 나 할 것 없이 수학여행만도 수차례씩 다녀왔고 아이들이 자라면서 데리고 다녔던 곳입니다.
불국사에 대한 이야기도 귀가 닳도록 듣고 배웠었고요.



<일주문>
불국사 주차장에 도착하니 주차장이 폐쇄되었고 그 아래에 있는 관광주차장을 이용하라고 합니다.
차를 주차시키고 일주문을 통하여 불국사 경내로 들어갑니다.


<천왕문>
천왕문 앞에 있는 연못으로 흘러들어가는 개울위에 아치형식으로 놓인 해탈교를 건너 천왕문으로 들어가니 수미산을 중심으로 세계를 지킨다는 네 명의 천왕이 험상궂은 얼굴로 출입자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국보 제 23호 청운교, 백운교와 그 위의 자하문>

반야교를 건너니 우리가 살고 있는 사바세계와 석가모니 부처가 계신 대웅전의 불국토(佛國土)를 연결하는 청운,백운교(국보23호)와 그 위에 자하문이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범영루>
청운, 백운교와 연화,칠보교 사이에는 범영루가 우뚝 솟아 있습니다.
고 최순우선생이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쌓아 올린 이 범영루의 석대의 아름다움에 대해 소개했던 글이 기억이 나서 이리 저리 뜯어봅니다.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최순우")



<국보 제 22호 연화교, 칠보교와 안양문>
미래세계의 부처인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으로 들어가는 연화,칠보교(국보 22호)가 자리를 하고 있고 그 위에는 안양문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내문을 보니 연화교의 계단에 연꽃잎이 조각되어 있다고 하여 자세히 보니 설명을 보지 않고는 알아보기 힘들게 연꽃잎으로 보이는 음각이 눈에 띕니다.



<사바와 불국의 경계>
사바세계와 불국토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연화,칠보교와 범영루, 그리고 청운,백운교와 자하문을 한장의 사진으로 담아봅니다.



<국보 20호 다보탑>
법화경에 석가여래의 진리를 다보여래가 늘 증명한다고 한 내용을 탑으로 조성했다고 하는 국보20호 다보탑, 정식 명칭은 "다보여래상주증명탑"이라고 합니다.
서편 방향의 기단의 가운데에는 돌사자가 앉아 있는데 오래 전 3김1노가 대통령 선거전을 할 때 불교신자인 노씨를 위해 10원 짜리 동전의 다보탑에 불상을 새겨 넣었다는 소문이 돌았던 그 주인공입니다.



<돌사자>
다보탑 안내문에는 기단에 노여 있던 네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세마리는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그 행방을 알 수 없고 지금은 한마리만 지키고 있다고 되어 있습니다.
"한국문화재의 수난사(이구열)"에 이에 대한 내용이 있어 읽어봅니다.
1909년 석굴암의 대리석 오층소석탑이 일본넘 '소네'통감에게 약탈당하고, 또한 일본넘 악당들이 석굴암내의 감불좌상 2구를 홈쳐가면서 본존불의 복장유물을 홈쳐가기 위해 본존불 둔부를 파괴하는 등 극심한 문화재의 약탈과 파괴 행위가 있었는데, 이때 그 일본넘 악당들이 불국사의 중들을 위협하여 돈 몇 푼을 쥐어주고는 다보탑에 놓여 있던 네구의 돌사자 중에서 상태가 좋은 세구의 돌사자를 가로채어 유유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 때 통감을 안내했던 경주군 주석서기였던 '기무라'가 후에 "조선에서 늙으며"라는 기록에
<나의 (경주군)부임을 전후해서, 도둑놈들에 의해 환금(돈주고 빼았았다는 뜻)되어 반출돼 있는 석굴불상(석굴암감불) 2구와 다보탑 사자 1대(1대:2구, 정확히는 3구)와 등롱(사리탑) 등 귀중물이 반환되어 보존상의 완전을 얻는 것이 나의 죽을 때까지의 소망이다.>라고 썼다는데 거기에도 대리석 5층소석탑에 대해서는 애써 언급을 피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쁜넘들......



<다보탑 안내문>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표 문화재의 하나인 이 다보탑 앞의 안내문을 써 놓은 우리나라 문화재청 사람인것 같습니다.
우리말로는 일본넘들이 세구의 돌사자를 약탈해 갔다고 써 놓고 그 옆 영문 안내문에는
"On top of stairway, a stone lion sits on tis hunch. It is Believed that there were four loins in four directiions."
라고 즉 '네구의 돌사자가 있던 것으로 믿어진다'고 되어 있고 일본넘들이 약턀해 갔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일본말은 읽을 줄 몰라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모르겠구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만 일본놈들의 약탈행위를 알리고, 외국인들에게는 차마 알리지 못하는 '눈가리고 아웅'하는 숨겨진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저 안내문을 문화재청 직원들이나 이 절의 스님들이 검토 했을텐데......
혹시 아직도 일제강점기를 그리워하는 친일파 인사들에 의해 작성, 검토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국보 제 21호 석가탑>
백제의 석공 아사달과 그의 아내 아사녀의 슬픈 전설이 담겨있어 무영탑이라고도 불리는 석가탑,
정식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인데 법화경의 다보여래와 석가여래가 나란히 앉아 설법하고 증명한다는 데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합니다.
위에서 언급한 '한국문화재 수난사(이구열)"에 이 석가탑의 아픈 얘기가 있어 읽어봅니다.
1966년 9월 3일, 경주에서 악명높은 골동품상인 윤아무개라는 놈이 석가탑의 유물을 노리고 유, 주, 임아무개 등 네명이 장비를 준비해서 밤 11시에 불국사로 침입, 석가탑의 삼층석탑 중심부를 들어 올리려다 실패를 합니다.
그 다음날(9월 4일) 더 큰 장비(Oil Jacky 등)를 준비하여 밤 11시에 다시 불국사로 침입하여 석가탑의 1층 옥개석을 들어올리는데 성공했지만 그 속에서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 다음날 밤(9월5일), 다시 침입하여 3층 옥개석을 들어 올렸지만 범인들이 노렸던 사리장치 유물은 만날 수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 다음날 아침 불국사의 승려가 석가탑이 이상하게 되어있는 것을 발견하고 신고하였고 며칠 후에 범인 일당을 체포하였다고 합니다.
이 악당들에 의해 석탑의 한 부분이 깨져 나가고 탑신이 기울어져 문화재 전문가와 석조물 보수 전문가들이 현지에 내려가 해체.보수작업을 하였는데 작업 도중에 이층 옥개석이 로프에서 떨어져 일부가 파괴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2층 옥개석 밑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인쇄물인 "무구정광다라니경" 등과 불국사 창건당시에 넣어 두었던 수십 점의 석가탑 사리장치 유물들이 발견되어 국보 제 126호로 일괄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습니다.
만약 그 도굴범 악당들이 1층, 3층 옥개석이 아닌 2층 옥개석을 먼저 들어 올렸더라면......

<대웅전>
석가모니 부처를 모신 대웅전입니다.

<대웅전 석가모니불과 협시보살>
안내문에는 681년에 창건되었고 수차례의 중수를 1765년, 창건당시의 기단위에 중건되었다는데 그 안에는 대웅, 즉 석가모니 부처가 모셔져 있습니다.



<무설전>
안내문을 보니 경론을 강설한는 강당인데도 무설(無說)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진리의 본질과 불교의 깊은 뜻이 언어 수단으로 써는 도달할 수 없는 언어도단의 경지임을 표현한 것이라고 합니다.
670년 의상대사가 이곳에서 최초로 강의를 하였으며, 창건이후 수차례의 중건, 중수를 거쳐 1973년 복원하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관음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751년에 세웠으며 1973년 불국사 복원때 다시 세웠다고 되어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관음전 안에는 사바 세상의 중생들의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그 것을 듣고 해탈시켜 준다고 하는 날렵한 자태의 관세음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비로전>
국보26호인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으로 751년에 건립되어 수차례의 중수, 중건을 거쳐 1973년 창건당시의 기단에 중건하였답니다.

<국보 제 26호 비로자나불>
비로전 안에는 불교의 진리를 부처의 육신이 아닌 진리의 모습을 신격화한 법신이라는 국보 제 26호 비로자나불이 모셔있습니다.



<보물 제 61호 사리탑>
보물 제 61호인 사리탑이 보호각에 갇혀 있어 사진을 담기가 어렵네요. 카메라를 이리 저리 조작하여 겨우 위의 사진을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 사리탑의 수난에 대한 얘기가 위에 언급한 "한국문하재의 수난사(이구열)"에 있어 읽어봅니다.
1902년 한국의 고적과 고건축물을 처음으로 세밀하게 조사했던 일본넘 세키노라는 녀석이 그 때 지가 신세를 지었던 일본넘에게 조사보고서인 "한국건축조사보고"한권을 보내주는데 이 보고서는 그 후 일본넘들이 우리문화재를 약탈하는데 아주 지대한 공을 세웠답니다.
1906년 세키노한데 받은 정보를 갖고 경주로 내려간 그 일본넘은 몇 명되지 않는 불국사 중들을 위협하고 약간의 돈을 준 후에 섬세하게 조각된 사리탑 하나를 일본을 반출합니다.
그 후, 토쿄에 있던 세키노는 우에노 공원부근에 있던 '정양헌'이란 요리집 정원에서 그 사리탑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데, 이를 고발하기는 커녕 국화(國華)라는 잡지의 요청으로 해설까지 썼는데 그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었다고 합니다.
1909년 이후, 세키노는 다시 우리나라에 들어와 고적조사를 하였고, 조선총독부는 그에게 불국사에서 반출해간 그 사리탑을 되 찿아 원위치 해 놓도록 조사를 의뢰하였다네요.
그 는 그 사리탑을 추적하여 1933년 5월 토쿄의 '나가오'라는 제약회사 사장집에서 그 것을 발견하였고 세키노의 설득에 의해 그해 7월 조선총독부에 기증하는 형식으로 불국사의 원위치로 사리탑을 되 돌려 놨다고 합니다.


<나한전>
나한을 모셔놓은 당우라고 합니다.

<나한전 불상>
나한은 불교의 수행을 완성하여 공양, 존경을 받을 만한 성자를 말한다고 하는데 아라한(阿羅漢)의 준말로, 살적(殺賊), 응공(應供), 응진(應眞)이라고도 한답니다.
또한 나한은 수행의 가장 높은 지위인 아라한과(阿羅漢果)를 얻은 자로서 부처가 열반했을 때 그 법을 전수받아 보호하고 지키는 수행자의 역할을 한다고요.
이 나한전 안에는 세구의 불상이 모셔있습니다.

<극락전>
국보 제 27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모신 극락전이랍니다.
751년에 건립하고 수 차례 중수, 중건을 하였고 1750년에 창건 당시의 기단웨에 중건을 하였다고 합니다.

,국보 제 27호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이 극락전에는 국보 27호인 미래세계의 부처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을 모셔있는데 사진을 담으려는데 이 곳을 관리하는 보살로 보이는 나이 지긋한 여자분이 '사진촬영금지'구역인데 왜 사진을 찍느냐고 면박을 줍니다.
그러고 보니 문지방 옆에 '사진촬영금지'라는 팻말이 보이네요.
민망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립니다.
그러면서 여기도 언젠가 부터 만연된 하지말라는 그놈의 '금지병'이 전염된 곳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슬그머니 화가 납니다.
신앙의 문제로 사진을 담는 것이 불경이기 때문인지, 아니면 재산권이 걸려 있으니 사진을 담지 말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너무 편협한 생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범종루>
극락전의 옆 문을 나오니 범종각이 묵직한 종을 매달고 자리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 저기를 기웃거리며 이 범종의 안내문을 찾아 보지만 눈에 띄지 않아 좀 아쉬웠습니다.
다른 문화재에 비해 가치가 없는지, 아니면 근래에 제작된 종이라 안내문이 없는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도 종의 이력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발 길을 밖으로 돌립니다.

<후기> 위 범종에 안내문이 없는 이유를 궁금해 했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은 일화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나와 있는 성덕대왕 신종에 대한 내용을 보다가 눈에 띄어 요약해 봅니다.
1970년대 유신시절에 불국사에는 에밀레 종을 모방하여 반쯤 크기가 되는 꽤 큰 범종 하나가 새로 제작하여 걸었는데 이 종에는 "박정희 대통령의 만수무강을 빕니다. 한*그룹 조중* 올림"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20세기의 '박정희 신종'이었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종은 항상 삐닥하게 걸려 있어 마치 6시 5분을 가리키는 시계방향과 같았다고요.
이 종소리가 고르게 퍼져 나가지 못하고 항시 웅웅거리자 불국사의 월산스님이 경주박물관에 왜 그런지 조사를 의뢰하였다고 합니다.
에밀레 종은 어디를 측정하더라도 두께가 위쪽은 10Cm이고 아래쪽은 22Cm인데, 이 종은 같은 면이라고 하더라도 어디는 10Cm, 어디는 5Cm로 균일하지 못하고 기포도 엄청 많이 들어가 어느곳은 하늘이 보일것만 같아다고 합니다.
그러니 삐딱하게 걸리 수 밖에......
박정희 대통령이 돌아가시고 2년이 지난 후에 다시 가서 보니 그 명문은 깍이어 없어졌더랍니다.
좀 얼굴이 뜨겁고 창피한 내용이라 하더라도 그 종의 내력을 안내판에 적어 놓고 종을 보호하여 후세의 본보기로 삼아야 하거늘, 명문을 깍아내고 안내문을 치워버린 사람들의 검은 속내가 들여다 보이는 것 같아 씁쓸한 느낌이 듭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