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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38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동 건물의 뜰앞에 있는 석물군 가운데 보물382호로 지정된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을 살펴봅니다.


<보물38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
봉림사는 경상남도 창원군 상남면 봉림리에 있던 통일신라 말기의 사찰로 진경대사가 스승인 현욱대선사를 개조로 추대하여 가야불교 초전법륜 성지인 자리에 진례성 봉림산 봉림사로 개창하여 세운 절이라고 합니다.
이 보월능공탑은 봉림사지에 있던 것을 일본 강압기인 1919년에 탑비와 함께 경복궁 경내로 옮겼왔다가 지금의 용산 박물관에 자리를 잡았다고요.
이 탑은 팔각원당형을 기본으로 삼아 기단위에 탑신부와 지붕돌, 상륜부를 올린 높이 2.9m의 부도인데 전형적인 8각의 부도이지만 다른 것에 비해 표면의 조각이 적은 편이라 재료의 빛깔과 아울러 총초한 느낌을 주고 있는데, 이 탑과 한 쌍을 이루고 있는 부도비의 건립연대인 924년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보물38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옥개석>
탑신위에 얹혀 있는 옥개석은 8각으로 되어 있는데 굵직한 지붕선이 꼭대기에서 아래로 완만한 곡선을 이루었으나, 서까래와 부연이 표현되지 않았으며 끝에 달려있던 꽃장식은 모두 부서졌다고 합니다. 또한 다른 묘탑에서 보이는 섬세한 기와골은 생략이 되어 있고요.
탑의 꼭대기, 상륜부의 머리장신은 양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와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로 되어 있는데 한 개의 돌로 되어 있다고 하고요.


<보물38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탑신>
역시 팔각을 이루고 있는 탑신(塔身)의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모양을 새겼는데, 별도의 장식성 조각을 배제한 Simple한 모습이고, 탑신의 각 면에도 다른 탑에서 보이고 있는 문, 창문, 자물쇠 등의 장식도 생략되어 있으며 아울러 비천상이나 천왕상 등의 조각도 새겨있지 않아 좀 단조로운데,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깔끔한 느낌을 주고 있습니다.


<보물38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받침돌>
받침돌은 전형적인 8각원당형으로 상·중·하대석(上·中·下臺石 )으로 이루어졌있습니다.
8각의 하대석에 안상(眼象 )을 새겼고, 북모양의 편구형(扁球形 ) 중대석에는 화형문(花形文 )을 새겨 도드라진 띠장식(횡대:橫帶 )으로 연결하여 놓았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기단부 하대석의 부재로, 중대석을 받치고 있는 받침 부분의 윗면에는 불꽃 모양으로 불쑥 솟아 있는 조각이 이채롭습니다.
상대석은 여덟송이의 앙련(仰蓮 )이 조각하였고, 그 위에 8각의 탑신(塔身 )을 올려놓았습니다.


<보물382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전경>
탑 전체를 보았을 때 얇고 길죽한 몸돌에 비해 지붕돌이 너무 커서 균형감이 떨아진다고 합니다.
이 탑의 주인공인 진경대사에 대해 알아봅니다.
봉림산문의 개산조인 진경대사 심희(855~923)는 김유신의 후손으로 문성왕 17년(855)에 태어나 9살에 혜목산에 원감대사 현욱을 찾아가 19살에 계를 받았다고 합니다. 이후 전국을 순례하였고, 888~898년까지 강진군에서 참선을 하는동안 그에게 배우려는 사람이 비 오듯 모였으며, 설악에 잠시 머물 때에도 선객들이 몰려들어 어디를 가더라도 숨지를 못하였다고요. 얼마 후 김해의 서쪽에 복림(福林)이 있다는 말을 듣고 길을 떠났는데 김해의 세력가였던 김율희가 그를 맞아 절을 고쳐주며 법을 간곡히 청하무르, 이곳 이름을 봉림(鳳林)이라고 고치고 선문을 열었다고 하네요. 대사가 이곳에서 죽을 때까지 머물고자 생각하고 가르침을 베풀고 있을 때 경명왕의 부름이 있는 까닭에 절을 떠나 왕성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와 법회를 열어 여러 사람들을 깨우치고 법을 전하였답니다.
경명왕 7년(923) 2월 24일 이른 아침, 대중에게 ‘모든 법은 다 공하고(제법계공), 온갖 인연은 다 고요한 것이니(만연구적), 말하자면 세상에 산다는 것은 완연히 떠가는 구름과 같다(완약행운). 너희들은 부지런히 중생을 교화하고 삼가 슬퍼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는 임종계를 남기고 돌아가시니 나이 칠십이요, 승려의 나이 오십이었답니다.
이에 경명왕이 대사의 시호를 '진경대사'라고 하고, '보월능공'이라는 탑 이름을 내렸다고 합니다.

<보물383호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화재청자료>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과 한쌍을 이루는 탑비입니다.
1919년 탑과 같이 경복궁으로 옮겨 졌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있다는데 용산국립중앙박물관의 뜰에서는 이를 만나지 못하였습니다.
경내에 세워 두었는데 못 본 것인지, 아니면 전시를 하지 않아서 못 본것인지?
이왕이면 탑이 있는 곳에 같이 세워놨으면 좋았을 텐데......
위의 보월능공탑비 그림은 그래도 짝꿍이 있어야 어울릴 것 같아서 문화재청의 사이트에서 살짝 빌려다 올려 놓았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