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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돈사 원공국사승묘탑과 채핀할머니-보물190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전시동 남쪽 뜰에는 석물로 된 문화재 몇 점이 세워져 있습니다.
오늘은 그 중에 보물제190호인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을 살펴봅니다.


<거돈사 원공국사 승묘탑>
먼저 승탑옆에 있는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원공국사 지종(圓空國師 智宗;930~1018)의 묘탑인데 강원도 원주 거돈사터에는 이것과 짝을 이루는 탑비가 남아있답니다.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승탑형식으로 단정하고 균형잡힌 팕가의 형태에 사천왕, 팔부중 등의 부조상이 새겨져 있으며 탑신 정면 문 위에 탑이름을 새긴 점이나 탑신에 꽃띠 장식을 한 것 등은 고려시대에 새롭게 시도된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좀더 자료를 찾아봅니다.


<원공국사승묘탑 지붕돌>
거돈사터에 남아 있던 고려 전기의 승려 원공국사의사리탑으로, 일제시대에 일본넘의 집에 소장되고 있던 것을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 왔다가, 지금의 위치로 옮겼답니다.
먼저 이 승탑의 지붕을 보며는 맨위에는 보개(寶蓋:지붕모양의 장식)가 놓여 있고, 팔각의 지붕돌에 새겨진 기와골은 처마에 이르러 막새기와로 마감이 되어 있으며, 서까래로 받혀진 여덟곳의 추녀는 살짝 위로 치켜올려 날렵한 모습을 하고 있는데 목조건물을 충실히 모방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까래 아래로는 네단으로 된 받침이 몸돌과 연결되어 있고요.


<원공국사승묘탑 몸돌>
팔각을 이루고 있는 탑신(塔身)의 몸돌은 여덟곳의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고, 기둥마다 꽃무늬로 장식을 하였습니다.
몸돌의 앞뒷면에는 문과 자물쇠 모양이 새겨져 있고, 좌우측면에는 창문 모양이, 그리고 남은 네 면에는 사천왕입상(四天王立像)이 새겨져 있습니다.


<원공국사승묘탑 받침돌>
이 탑의 본래 바닥돌은 원주의 거돈사터에 남아 있다고 합니다.
받침돌은 세단으로 이뤄졌는데 팔각으로 되어 있고, 아래받침돌은 각 면마다 안상(眼象)을 새기고 그 안에 꽃모양의 무늬를 두었으며, 가운데 받침돌은 아래위에 테를 돌리고 안상 안에 팔부신중(八部神衆)을 새겼고, 윗받침돌에는 활쫙 핀 연꽃잎을 2중으로 새겨있습니다.
이 탑과 짝을 이루는 탑비의 건립이 로 되어 있는데 있어 이 사리탑도 같이 건립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려 현종16년(1018)이라고 합니다.


<원공국사승묘탑 경복궁 시절의 모습-문화재청 자료>

이 승묘탑에 담긴 얘기를 들어봅니다.
이 승묘탑은 서울 남대문 시장부근에서 살았던 '와다'라는 녀석이 자기 집 정원에 앉혀놓고 있었다고 합니다.
언제 어떤놈이 어떻게 어떤 수법으로 본래의 자리에서 반출이 되었고 또한 어떻게 '와다'라는 녀석의 손에 들어갔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는데 그 당시 이 승탑만 반출을 하고 그 지대석과 또한 이 탑의 짝꿍인 탑비(보물78호)는 제자리에 남아있답니다.
이 승탑은 1938년에 이미 총독부에서 지정문화재로 등록이 되었다고요.
해방이 된 후, 1948년에 미 군정청의 미술, 고적담당 고문으로 국립박물관에서 근무하던 '채핀'이라는 미국인 할머니가 있었는데 어느날 과거 일제총독부가 지정한 문화재를 확인하기 위해 남대문의 그 '와다'녀석이 살던 집에 가봤더니 아뿔사! 이 승탑이 사라지고 없더랍니다.
깜짝놀란 채핀 할머니가 당시 박물관의 연구관으로 근무하던 '황수영'에게 물었지만 그를 포함하여 아무도 알고 있지 않았답니다.
그 때부터 승탑의 행방을 추적, 조사하였고, 몇몇 사람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행선지를 밝혔졌다고요.
이아무개라는 사람이 이 승탑을 실어다가 성북동 골짜기에 있는 지네 별장의 계류옆 정자에 세워놓은것을 다시 찾아왔다고 합니다.

'채핀' 할머니, 감사합니다.


<보물78호 거돈사지의 원공국사승묘탑비 - 문화재청자료>

거돈사에 남아 있다는 보물제78호 원공국사승묘탑비를 문화재청 자료에서 빌려와 살짝 올려봅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