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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십층석탑-국보 제86호

국립중앙박물관 전시관을 들어가 로비의 카운터에서 박물관안내도를 집어들고 대략 훑어 보니 1층은 고고관과 역사관, 2층은 미술관I과 기증관, 3층은 미술관II와 아시아관으로 되어 있습니다.
1층의 복도를 따라 들어가니 끝 부분에 경천사십층석탑이 우뚝 서 있네요.

 

 

<경천사십층석탑-정면
국립중앙박물관의 개관 전에 홈페이지에 들어가 사진 촬영여부를 확인해 보니 사진촬영이 금지 되어 있고 필요시에는 유물복사신청서를 제출한 후에 소정의 수수료를 내고 개관을 하지 않는 월요일, 담당직원의 안내에 따라 있는 그대로의 조명상태에서만 촬영을 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많은 시민들이 사이버민원란에 문제를 제기하였는데 개관을 하면서 상업적 촬영을 배제하고 유물의 보호를 위해 삼각대와 플래쉬를 사용하지 않고 관람질서를 방해하지 않는 한에서 촬영을 허용한다고 하였네요.
 

<경천사십층석탑-정면>
삼각대와 플래쉬를 쓰지 않고 실내의 어두운 조명에서 촬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하기야 매점에서 전시품도록을 구입하면 되겠지만 사진상태가 좋지 않더라도 내손을 담아야 그림에 애정도 갖게 되고 소중하게 다뤄질것 같아 촬영조건이 되지 않지만 최선을 다해 담아봅니다.

 

 

<경천사십층석탑-측면상향>
가까이 다가가니 1층에서 3층까지 확보된 공간에 탑이 놓여 있는데 탑에 문외한인 내눈에도 정교하게 새겨진 돋음조각과 조형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탑의 앞에 붙여 놓은 안내문을 살펴봅니다.
이 탑은 고려 충목와 4년(1348)에 대리석을 재료로 하여 세운 십층석탑으로, 고려시대 목조 건축의 다포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당시 불교 교리와 사상을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기단부는 사면이 튀어나온 亞자형으로 사자, 서유기, 나한 등의 조각이 있고, 난간과 탑신 그리고 지붕으로 이루어진 탑신부는 목조탑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석가모니불'등 16회상이 조각되어 있고 지붕에는 각각이 어떤 장면인지를 알려주는 현판을 붙여놨다고 하고요.

 

<상륜부가 없는 10층의 지붕>

 

 

<경천서십층석탑-탑신하부>
상륜부는 원래의 모습을 알 수 없어 박공형대의 지붕만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유홍준 교수의 문화유산답사기에 이에 대한 의견을 피력했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대충 더듬어 보면 경복궁에 복원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 같은데 "이 탑의 상륜부는 원래의 모습을 알 수가 없는데 원각사탑인가 어느 탑인가의 상륜부를 모방하여 복원했는데 이렇게 복원을 할 바에는 그냥 놔두는 좋을 것"이라는 내용으로 기억됩니다.
상륜부는 없지만 그런데로 상상을 해보는 맛도 있네요.
그리고 이탑은 1907년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카가 일본으로 밀반출하였으나, 영국 언론인 베델과 미국 언론인 헐버트 등의 노력에 의해 1918년 반화 되었다고요.
1960녀에 경복궁에 복원되었으나, 산성비와 풍화작용에 의해 손상이 우려되어 1995년 해체하였고 2005년에 새 박물관 개관에 마춰 "역사의 길"에 복원하였다 합니다.

 

 

 

<경천사십층석탑-정면하향>
인터넷 검색으로 좀더 자료를 찾아봅니다.
모두 110톤의 무게에 142개의 부재로 이뤄진 이 탑의 복원은 레이저를 이용하여 석재의 훼손없이 오염물질만 제거하였고 같은 가장 유사한 재질인 강원도 정선 및 평창의 대리석을 이용하여 복원된 부분은 약 20%정도라고 하고요.
탑의 형식은 기단부에서 3층까지는 亞자 형이고 4층 위로는 직사각형이며 각 층에는 난간을 둘렀고 옥개 밑에는 다포집 형식의 두공 형태를 하였으며 상면에는 팔작지붕의 형태를 띄고 있답니다.
아울러 초층 옥신의 이맛돌에 새겨진 조탑명(造塔銘) “至正八年戊子三月日”이란 기록있어 건립연대가 1348년(충목왕 4)임을 알 수 있고 하네요.

 

 

<천사십층석탑-상향측면>
이 탑은 충목왕 때 강융 등 원나라에 빌붙은 아첨배에 의해 개풍군 부소산 자락에 세워졌는데 '원나라 황제와 태자, 황후의 만세를 축원하고 순하게 비를 내려 부처님의 빛을 더욱 발하고 법륜이 항상 전하기를 축원'하는 명문이 탑신에 새겨져 있다고 하여 원나라에게 당한 수모를 엿보이고 있다네요.
그렇지만 당대 최고의 권세가들에 의해 발원이 된 만큼 생생한 돋을 새김, 사방 팔방의 팔작지붕, 지붕의 기와골, 조형미와 정교한 조각기술 등 최고의 기술과 예술로 지어졌다고 하고요.

 

<경천사십층석탑-하향측면>
안내문에는 일본넘 다나카가 홈쳐간 것을 영국과 미국의 언론인들의 노력으로 반환이 되었다고 하는데, 또 한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당시 조선 총독으로 있던 하세가와의 노력이 있었던 모양인데 우리의 유물 보존의 의미보다는 자기의 관할권에 있어야할 문화재가 개인에 의해 일본으로 밀반출 된 것에 직무상의 책임에 따라 반환을 추진한게 아닌가 하는 논지의 검색결과도 있습니다.
반환 후 경복궁의 회랑에 방치되었던 것을 1960년에 복원 전문가인 임천의 노력으로 복원되었지만 일부 대체 자재에 녹이 슬고 틈이 생기고 또한 우천에 의한 손상이 우려되어 1995년에 재 해체 되었고 10년간의 대수술을 거쳐 이번에 이 자리에 복원을 하였다고 합니다.

 

<경복궁에 있었던 경천사십층석탑>

검색으로 퍼온 사진입니다.
1995년 해체 전의 경복궁 뜰에 서 있던 경천사십층석탑의 모습인데 상륜부도 복원되어 있습니다.
이 경천사십층석탑의 일본 밀반출과 다시 돌아온 내력에 대한 자세한 뒷 얘기를 정리하여 다음 기회에 다시 올릴까 합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