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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열두대 (탄금대) (080414)

2005년 4월 14일...
연풍성지를 가는 길에 충주에 들러 탄금대로 향합니다.
탄금대는 진흥왕 때(551) 가야국의 우륵이 신라에 귀화하여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산상대석에 앉아 가야금을 타니 그 미묘한 소리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부락을 이루어 탄금대라 부르게 되었답니다.


<충혼탑>
안내판을 보고 공원안으로 들어가니 충혼탑이 제일 먼저 반깁니다.



<팔천고혼위령탑>
이곳은 임진왜란 때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8000여명의 군사와 함께 배수진을 치고 왜장 가또 기요마사와 고니시유끼나가의 군대를 맞아 격전을 벌여 패하자 장렬하게 강물에 몸을 던져 순국한 곳이고요.
그 때 순국한 영령들을 기리고자 이 위령탑을 세웠답니다.

<감자꽃 노래비>
권태응이라는 분에 대해서도 아는게 없고 감자꽃이란 노래도 잘 몰라 검색을 해봤습니다.
<아동문학가. 충청북도 충주(忠州) 출생. 1937년 경기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早稻田]대학 정치경제과에서 수학하였다. 재학중 일본의 치안유지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로 1년간 복역하였으며 출옥 뒤 폐결핵으로 학교를 중퇴하였다. 충주에서 요양중 토속적인 소재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아동들에 대한 애정을 갖고 동요를 많이 발표하였다. 68년 충주 탄금대(彈琴臺)에 동요 《감자꽃》을 새긴 그의 노래비(碑)가 세워졌다. 작품으로는 동요집 《감자꽃》과, 동요 《도토리들》 《산샘물》 《달팽이》 《꽃모종》 등이 있다.>



<탄금정>
우륵선생이 가야금을 타던 장소에 세운 정자인가 봅니다.





<우륵선생의 탄금대>

우륵선생의 탄금대라는 기념비로 가야국 사람으로 신라에 귀화하여 가야금과 12곡을 만들고 국원(충주)에 살면서 '계고'에게는 가야금, '법지'에게는 노래를, '만덕'에게는 춤을 가르쳤다는 내용이네요.



<남한강>
열두대에서 본 남한강인데 시계가 좋지 않아 좀 그러네요.
탄금대는 아는 사람이 많은데 그 아래의 '열두대'에 대해서는 검색을 해도 잘 않나오지 않습니다.
오래 전에 어느분에게 들은 얘기로는
옛날에는 지방에서 서울로 가는 물류는 배를 이용하였고 남한강도 중요한 수로였답니다.
뱃길은 사고가 나게 마련이고 강물이 거세거나 회돌아치는 곳에서는 특히 사고가 많이 났다구요.
그래서 뱃길에 사고를 나지 않게 해달라고 제사를 지냈는데 그 곳을 '당' 또는 '대'라고 불렀으며 남한강 수계에는 12곳이 있었고 지금도 남아 있는 지명으로는 첫번째 당인 일산의 '원당', 그리고 여덟번째인 남양주의 '팔당' 그리고 마지막 열두번 째가 충주의 '열두대'랍니다.



<신립장군순국지지 표석>
신립장군의 장렬히 몸들 던져 생을 마친 장소인 열두대에 세운 표석입니다.

<신립장군 순절비>
신립장군은 선조 때 한성판윤을 지냈으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순변사로 임명되어 문경새재에서 왜군을 맞아 싸우려다 이미 적의 선봉이 새재를 점령하자 이곳에서 배수진을 치고 싸웠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자 열두대위에서 몸을 던져 순국하였으며 그 후 영의정에 추증되고 충장공의 시호가 내려졌는데 유비무환의 교훈을 남기고 장군의 넋을 기리고자 1981년에 순절비를 세웠답니다.



<충주땜>
탄금대를 돌고 나오니 운전기사가 충주땜 진입도로에 벗나무가 많아 꽃이 피면 환상적이라며 차를 충주땜으로 돌립니다.


<중주땜 진입로의 벗꽃>
진입로의 양편에 쭈욱 늘어선 벗나무에 벗꽃이 만개를 하였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