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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태릉(050325)-문정왕후의 릉

2005년 3월 25일...
집 근처에 있지만 가보지 못한 태강릉을 갑니다.
지난 가을에 강아지를 데리고 갔더니 출입이 안되어 포기를 했었구요.


<태강릉 정문>
태강릉은 중종의 후비인 문정왕후 윤씨의 능인 태릉과 명종과 그의 왕비인 인순왕후 심씨를 모신 강릉을 한 울타리안에 두고 있어 그렇게 부르고 있답니다.
간혹 공릉동에 '공릉'이라는 릉이 있지 않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지요.
공릉동은 서울로 편입이 되면서 지금 공릉동지역에 있던 공덕마을과 이쪽 태릉쪽에 있던 마을이 동명을 갖고 마찰이 있었는데 결국 공덕마을의 공과 태강릉의 릉을 한자씩 떼어 공릉동이라고 했답니다.

<홍살문>
문정왕후는 몇 년전에 인기를 끌었던 '대장금'에서 왕비로 중종이 반정으로 왕이 되자 왕비의 아버지가 반대파라고 해서 왕비를 폐위시키어 내쫒고 후비로 들어온 왕비이죠.
인종이 요절, 명종이 어린나이로 왕위에 오르자 왕을 대신하여 나라를 다스린 대단한 여걸이라고요.
홍살문은 삼태극에 삼지창으로 되어 있는데 사롱의 위부분 2개가 절단되어 있습니다.
기단서게 구멍이 뚫려 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구요.



<신도와 어도>
홍살문을 지나 정자각으로 가는 길은 두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높은 쪽은 신도로 영혼이 홍살문을 통과하여 걸어 들어가는 길이고 낮은 쪽은 어도로 임금이 영혼을 영신하여 모시고 들어 가는 길입니다.


<망료위>
사헌부 감찰관이 예감에서 축관이 축문을 불사르는 것을 감시하는 장소라구요.
축문을 불사르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었나 봅니다.



<정자각>
丁자형의 맞배지붕 건물로 제관들이 제례를 지내는 곳이랍니다.
신도와 어도의 양쪽 넓은 지역에는 박석을 깔아 궁궐에서와 같이 동쪽에는 문관이 서쪽에는 무관과 종실이 4배를 했었다구요.



<묘역>
묘역은 곡장이라는 담장으로 뒤를 둘렀으며 능앞에 3단의 계단식으로 되어 초계, 중계, 하계로 구분을 하였고 석난간, 병풍석, 상석, 장명등, 석호, 석양, 망주석, 문석인, 석마, 무석인 등의 석물로 구색을 맞추어 놨다는데 가까이 접근이 되지 않아 실물 확인이 어렵습니다.



<예감>
제례를 마치고 축문을 불사르는 곳으로 정자각 북동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서계>
정자각의 서쪽에 있는 계단으로 축관이 축문을 불사르러 오르내리는 계단입니다.



<신계 및 동계>
신계는 신도를 통과한 후 정자각으로 영혼이 오르는 계단으로 돌 난간이 되어 있고(우측계단) 그 옆에 있는 동계는 제관들이 산릉제례를 하기위해 오르내리는 계단입니다.



<비각>
비갈(비석)을 보호하기위한 집으로 정자각의 동쪽에 위치 합니다.



<비석>
비각안의 비갈에는 왕비 또는 왕의 일대기를 기록합니다.



<수복방>
능지기들이 능역을 청소하기 위하여 정자각 동북방에 세운 건물입니다.



<금천교>
궁궐의 금천교를 모방하여 금천교를 설치했답니다.
태릉의 주변에는 넓은 숲지가 되어 산책하기에 아주 좋도록 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나무들도 많고...
벤치에 앉아서 쉬고 있는데 딱따구리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기도 하구요.
태릉을 둘러보고 나가면서 강릉은 왜 공개를 하지 않느냐고 했더니 학술적 연구의 목적으로 미리 예약을 하면 관람이 가능하답니다.
그래서 이렇게 왔으니 어떻게 가볼 수 없느냐고 했더니 대답이 좀 길더니 결국은 안된다고요.
여기서 강릉으로 가려면 군부대가 있고...
아쉽지만 그냥 발길을 돌려서 나왔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