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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궤산정-노강서원(050318) 박세당가문의...

2005년 3월 18일...
장암역에서 수락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개울 건너편에 고가가 눈에 들어옵니다.
조선 숙종 때 공조판서를 지냈던 실학자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이 당쟁에 혐오감을 느껴 관직에서 물러난 후 기거하며 후학을 양성하던 곳으로 보이는데 지금은 12대 종손되시는 분이 '서계문화재단'을 세워 그 분의 학술연구활동과 유물, 유적을 관리하고 있다구요.
다음에 시간을 내어 한번 둘러 볼까 합니다.


<궤산정-아래쪽에서 본 모습>


<궤산정 옆모습-지붕이 쏟아져 내릴 것 같아서...>
계속 올라가면 개울건너에 아주 낡아서 지붕 일부가 손상된 고색이 창연한 정자가 있는데 함석에 페인트로 쓴 안내문마저 글씨가 벗겨지고 녹이 난체 철망안쪽에 세워져 있습니다.
서계문화재단이던 아님 의정부시이던 정자가 더 훼손되기 전에 손을 봤으면 좋겠습니다.



<궤산정 안내문>
박세당 선생이 후학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던 곳으로 '아홉진산을 만드는데 마지막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란다.'라는 고사에서 '궤산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요.



<암각문>
정자를 받치고 있는 바위 옆에는 선생의 글씨라는 돌과 샘이 어울어짐을 의미하는 '석천동'이라는 글씨가 짜임새 있게 암각되어 있습니다.


<홍살문>
좀더 올라가면 홍살문이 맞아 줍니다.
릉이나 묘에 있는 홍살문과는 좀 달리 삼태극 위에 삼지창이 없는데 어떤 의미인지 모르겠구요.


<청풍정 주촛돌>
홍살문을 지나면 오른쪽에 청풍정의 유지가 있는데 주촛돌만 남아 있습니다.
박세당선생이 김시습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충렬사'를 짓고 그 앞에 정자를 지어 유생들과 학문을 강론하던 곳이라고 표시되어 있습니다.



<노강서원 전경>
노강서원은 숙종15년 인현왕후의 폐츨을 죽음으로서 반대했던 박태보(1654~1689: 박세당의 차남)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21년에 노량진에 건립한 사당으로 본래는 '풍계사'이었으나 숙종23년에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숙종에게 '노강'이라고 사액을 받았고 영조 30년에 중건하였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 남았던 47개 서원 중의 하나랍니다.


<노강서원 사당>
박태보는 숙종 3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들어 숙종15년에 인현왕후의 폐위를 반대, 귀양가던 중에 노량진에서 36세로 생을 마쳤고 숙종20년 모든 죄를 사면받고 이조판서로 추증이 되었답니다.
1969년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한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으로 맞배지뭉의 사당과 동재, 서재로 되어 있구요.



<노강서원 사액현판>
노강서원의 안내문에는 매월당 김시습의 사당이 '청절사'라고 되어 있는데 청풍정의 안내문에는 '충렬사'로 되어 있습니다.
또 청풍정의 안내문에 보면 띄어쓰기가 틀린곳이 눈에 거슬리고요.
개인적으로 쓰는 글이야 잘 몰라서 아님 실수로 띄어 쓰기나 맞춤법이 틀릴 수도 있지만 문화재, 유적지 등의 안내문에는 제대로 썼으면 합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