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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세종대왕기념관(050315)-예식장인지?

2005년 3월 5일...
홍릉에 있는 세종대왕 기념관을 찾았습니다.
기념관의 정문을 바라보는 순간 정내미가 뚝 떨어지네요.
기념관의 정문에는 대형 결혼식장 안내 현수막이 걸려있어 여기가 기념관인지, 아님 예식장인지?
오늘(2005년 4월 16일)도 양재동의 교육문화회관에 결혼식이 있어 갔다 왔는데 거기도 결혼식이 시간별로 꽉 차있고 밖에는 겨울이라 영업은 않지만 수영장까지 있더구만요.
기념관, 회관의 본연 임무가 뭣인지...?
현수막 사진을 찍어 올리려다가 그나마 세종대왕을 흠집내는 것 같아 못 본척 안으로 들어갑니다.


<세종성왕기념탑>
1997년 10월 23일 세종대왕기념탑 설립위원회에서 세운 기념탑이랍니다.



<물시계>
물시계는 신라 성덕왕때에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세종 20년에 정밀한 자격루를 만들어 사용하였으며 지금 덕수궁에 몸체만 남아 있는 물시계는 중종 31년(1536년)에 만든것이며 여기에 있는 이것은 덕수궁에 있는 물시계를 1/2로 축소하여 만든 모형이랍니다.



<측우기>
세종 23년(1441년)에 창안하여 만든 세계 최초의 우량계로 길이는 31.215Cm(주척으로 1척5촌)이고 지름은 14.567Cm(주척으로 7촌)로 이의 견본을 각 고을에 보내어 자기나 와기로 만들어 설치하고 비가 온뒤 주척을 꽂아서 고인 빗물의 깊이와 비가 온 시간, 비의 종류 등을 측정, 기록하였답니다. 쇠를 부어 만든 이 측우기는 서울에는 서운관에 설치하였다구요.
여기에 전시된 모형은 기상청에 소장되어 있는 헌종 때의 측우기(보물561호)와 관상감측우대(보물 843호-세종대로 추정)를 복원한 것이랍니다.


<수표: 보물 제 838호>
청계천의 물높이를 재기 위해 수표교 아래에 설치하였던 수위측정기로 기둥에는 눈금이 있습니다.
돌기둥에는 눈금이 새겨져 있는 이 수표는 세종 23년(1441년) 청계천과 한강의 물높이를 재기위해 세운것으로 현재 여기에 있는 수표는 영조 25년(1749년)에 제작된 것이라구요.
1960년 청계천 복개공사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겼다가 1973년 10월에 이리로 옮겨 보존되고 있다네요.기둥에 새겨있는 눈금은 주척(周尺) 1자로 21.5Cm의 간격이며 10척까지 표시되어 있답니다.



<석상 류>
세종대왕의 영릉은 문종 2년(1452년)에서초구 내곡동 산 13번지에 있었는데 예종1년(1469년) 3월에 지금의 여주군 능서면으로 옮기면서 석물은 그대로 두었다는데 아마도 그 것들 이리로 옮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석수, 석인 등 모든 조각이 아주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어 옛 장인들의 솜씨를 보여주고 있네요.



<세종대왕 신도비>
영릉을 여주로 옮길 때 주변 석물들은 옮기지 않았다는데 이 신도비는 옛 영릉터에서 1Km떨어진 순조의 인릉 근처에서 발견되어 이리로 옮겼답니다.
총 4886자가 새겨져 있는데 글자가 깍여나가 읽기가 어렵다는데 앞면의 글은 정인지, 뒷면은 김조가 짖고 글씨는 안평대군이 썼다는데 150여명의 석공이 동원되어 2년만에 완성했다구요.



<세종대왕 신도비>
이 비의 머리부분인 용머리 장식은 두마리의 용이 좌우에서 구슬을 물고 있는 매우 정교한 조각인데 오랜 세월의 풍화작용으로 심하게 손상이 되었는데 비문은 세종대왕의 어진 업적을 찬양하고 소헌왕후, 후궁 및 그 자녀들에 관한 사항을 기록하고 있답니다.
세종대왕기념관, 관련 직원들이 좀 어렵더라도 장사속 보다는 본래의 취지에 맞게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낳은 내일을 일구는 것에 전념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세종대왕께서 얼마나 화가 나실까 걱정이 됩니다. 당신을 팔아 장사를 하고 있다고.
기념관의 전시실은 입장료까지 받고 있던데...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