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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돌이

041228 경희궁

2004년 12월 28일 경희궁을 찾았습니다.
경희궁은 임진왜란 후에 창덕궁과 경복궁을 꺼려했던 광해군이 선조의 다섯째 아들 정원군의 집터에 왕기가 서렸다는 술사들의 말을 듣고 1617년(광해군 9)부터 세로 지은 궁으로 처음에는 경덕궁(慶德宮)이었는데 영조때 정원군의 시호인 경덕(敬德)과 음이 비슷하다고 해서 경희궁으로 바꾸었다네요.


<흥화문>
그런데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은 쫒겨났고 정원군의 장남인 인조가 왕이 되었답니다.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9호인 흥화문은 경희궁의 정문으로 원래의 자리는 이자리가 아니고 동쪽의 구세군 자리에 있던것을 일본넘들이 1932년에 이등박문의 사당인 박문사를 명성황후 시해때 저항하다 숨진 충신들을 모시는 곳인 장충단에다 지으면서 정문으로 쓰기위해 헐어다가 갔고 그후 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었던 것을 1988년 경희궁 복원사업으로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였답니다.
장충단에다 우리 원흉인 이등박문 사당을 지은 일본넘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흉악한 넘들입니다.
경희궁을 '야주개대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는데요...
흥화문의 현판이 아주 명필이라 밤에도 글의 광채가 훤하게 빛나서 그렇게 불렸다구요.



<숭정문>
숭정문은 복원공사를 실시하기 전에 실시한 조사에서 발굴된 계단석을 그대로 사용했는데 400년의 풍상을 격은 것이라네요.
동쪽에 있는 창덕궁을 동궐이라고 부른데 대하여 서궐이라고도 불리웠답니다.
경희궁은 숭정전 자정전 등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100여동의 전각으로 이루어졌었는데 1829년에 순조때 큰 화재로 주요 전각 절반이 소실된것을 이듬해 <서궐영건도감>을 설치하여 모두 중건하였으나 훙악스런 일본넘들이 1907년 서쪽경역에 통감부의 중학교를 설립고 1915년 경성중학교로 개칭하면서 숭정전, 회상전, 흥정당 등 많은 건물을 매각, 또는 전용하면서 대부분의 건물을 철거하고 학교로 사용하면서 궁궐의 면모를 잃어버렸답니다.
우리 민족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짖이 아니겠습니까?



<숭정전>
경희궁자리는 해방후에 서울고등학교가 자리를 잡고 있다가 이전하면서 현대건설 소유로 되었던것을 반환받아 시민공원으로 사용하였다구요.
다행히도 1989년 서울시가 정도 600년기념사업으로 민족정기 회복차원을 위한 경희궁 복원사업을 시작하여 지금의 모습만이라도 복원을 했구요.
1830년 화재로 소실된 경희궁을 중건하면서 그 내용을 기록한 문헌인 '서궐도감의궤'이 남아 있어 이를 바탕으로 원형에 충실하게 복원이 가능했답니다.
독도에 관한 기록 및 지도 발굴이 한창인데... 이것을 보면서 '기록'의 중요성이 새삼 느껴집니다.



<숭정전의 답도>
경희궁의 정전인 이 숭정전도 일본넘들에게 수모를 당한곳으로 이넘들이 1926년 숭정전을 일본넘 절인 조계사에 팔았고 지금은 동국대학교의 정각원으로 쓰이고 있답니다.
지금 자리에 있는 숭정전은 새로 복원한 것이라는데... 왜 동국대의 정각원으로 쓰고 있는 본래의 숭정전을 옮겨 오지 않고 다시 지었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안됩니다.
재산권 때문이라면 도둑, 강도짖을 해서 팔아먹은것은 무효일테고... 혹시 누군가의 입김으로?

<숭정문, 품계석, 삼도 및 박석>
이 복원된 숭정전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목조건물로 총길이 300m의 행각으로 둘러 쌓여는데 이들의 복원 사업에는 7만장의 한식기와가 소요되었답니다.



<숭정전의 옥좌>
숭정전의 옥좌도 다른 궁궐과 형식이 똑 같습니다.
단위에 어좌가 놓여 있고 그 뒤에 일월오악도 병풍을 둘렀으며 머리위에는 보개를 덮었구요.
경희궁터가 시민공원으로 조성되기 전, 이곳에 있던 서울고등학교 건물을 현대건설에서 사용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대건설에서 교육원으로 활용하여 직원들의 사내교육을 여기서 시행하였고 또한 해외의 대형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추후 그 시설을 운영관리 해야하는 그 나라의 운전요원들에게 교육을 시키는 장소로 활용하여 80년대에 많은 외화를 벌어들이는데 큰 몫 하기도 하였습니다.
아울러 문서고로도 사용을 했었구요.
어느해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린날 서류 열람을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
교육을 받고 있던 열대지방에서 온 외국 교육생들이 생전 처음보는 눈을 신기해하며 사진찍고 장난을 하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숭정전 천정>
숭정전 천장에는 황룡 한쌍이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습니다.
100여동의 전각가운데 지금까지 복원된 것을 흥화문, 숭정문, 숭정전, 자정전, 태령전 등과 금천교가 복원되어 2002년 부터 시민들에게 공개를 하고 있답니다.


<자정문>
숭정전에서 자정전으로 가는 문입니다.




<자정문의 답도>
경희궁의 자정문은 다른 궁궐과는 조그 다른 형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다른 궁에서는 정전과 편전 사이의 문에는 답도를 설치하지 않는데 자정문에는 답도가 있네요.

<자정전>
임금이 신하들과 회의, 경연 등의 공무를 수행하던 곳이랍니다.
이것도 서궐도감에 따라 복원하였다구요.


<태령전>
자정전의 서쪽에 있는 건물로 본래는 특별한 용도가 정해지지 않았던 곳인데 영조20년에 그의 어진이 그려지자 이곳을 중수하여 그 어진을 봉안하였답니다.
현판의 글자는 한석봉의 글씨를 집자하여 새겼다구요.




<서암>
태령전 뒤에 좀 푸석거리는 느낌이 있는 암천(巖泉)이라 불리는 묘한 형상의 바위속 샘이 있습니다.
경희궁의 명물이라는데 본래 왕암(王巖)으로 불리워 여기에 궁구러을 지었다는 속설도 있다구요.
숙종34년((1708)년에 숙종이 서암으로 이름을 고치고 '서암' 두글자를 크게 쓰게하여 새겨두게 했는데 그 사방석은 지금은 전해지지 않는답니다.



<금천교>
큰길옆에 복원된 금천교인데...
난간 네 귀퉁이와 옆에 돌짐승이 버티고 있으며 홍예사이에는 도께비상을 새겨 잡스런것이 궁궐로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고 있습니다.



<경희궁 배치도>
위에 있는 그림은 경희궁 안내문의 바탕에 인쇄되어 있는 모습인데 아마도 경희궁 본래의 모습아 아닌가 합니다.
붉은 점으로 표시한 곳이 복원된 건물인가 봅니다.
일본넘들이 훼손시킨 이 건물들도 빨리 복원하여 옛모습을 되 찾았으면 합니다.
kangjinee......^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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