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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신 묘

2007년 9월 30일, 경주 충효동 송화산 줄기에 있는 사적21호인 김유신 묘를 찾아갑니다.
김유신은 김춘추를 도와 당과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누구나 잘 아는 신라의 장군입니다.
김춘추의 여동생 문희가 쉬~하는 꿈을 동생에게 사고나서 김유신의 부인이 되었다는 얘기도......
묘역에 서있는 안내문을 요약해 봅니다.
금관가야의 마지막 왕인 구형왕의 증손으로 15세에 화랑이 되었고, 무예와 지략이 대단하여 나라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앞장서서 지휘를 하였다.
<태종 무열왕 7년(660)에 나당연합군 신라군 총사령관이 되어 백제를 '병합'하였고, 문무왕8년(668)에는 고구려를 '병합'하였으며, 당나라 군사도 물리쳤다. 문무왕 때에는 태대각간의 관직을 받았고, 뒷날 흥덕왕 때에는 '흥무대왕'으로 추봉되었다.>

<흥무문>
김유신 묘역으로 들어가는 흥무문입니다.
많은 신라왕릉을 돌아보았지만 단일 묘역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런 출입문이 있는 것을 보지 못하였는데 일개 장군의 묘에......
또한 안내문의 자세히 살펴보면 김유신이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켰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병합'을 하였다고 되어 있는데, 아마도 외세와 결탁하여 동족을 멸망시킨 김유신 장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는 아닌지......?

<사적21호 김유신 묘>

김유신 장군 묘의 전경입니다.
장대석의 계단 위에 난간석, 호석 등 묘역의 장식이 김유신 당대의 왕이었던 태종 무열왕릉보다 훨씬 화려합니다.


<태종 무열왕릉>
위의 무열왕릉과 김유신묘를 놓고 아무에게나 '어느것이 왕릉이냐?'고 물어보면 누구나 김유신묘를 왕릉이라고 대답을 할 것 같습니다.


<김유신 묘>
묘의 앞에는 하마석과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라는 비가 좌우에 있고, 묘의 앞에는 상석이 자리를 했으며, 묘의 둘레는 난간석이 둘러서 있고 봉분은 호석으로 둘렀는데 십이지신상이 새겨진 것과 아무것도 없는 것이 교대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이 난간석과 상석은 1973년에 묘역에서 납석 해상(돼지)이 발견되자 1974년 부터 발굴하여 상석이 있던 자리를 찾아내어 이를 복원하였고 또한 난간석도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 비>
묘의 우측에 서있는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비입니다.
검색을 해봅니다.
<673년 7월 1일 79세로 김유신이 죽자 문무왕(文武王)은 채색 비단 1천필과 2천석의 조(租)를 내리고 북과 나팔수 100명을 보내 금산원(金山原)에 예장(禮葬)하고 유사(有司)로 하여금 비(碑)를 세워 그의 공적을 기리고 민호(民戶)를 배정하여 묘(墓)를 수호하게 하였다>고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기록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조(租)라고 하면 논이나 밭에 물리는 세금을 말하는데 '2천석의 조(租)'라면......?
그리고 1710년 경주부윤이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新羅太大角干 金庾信墓)'라는 비(碑)를 세웠다고 하는데 아마도 위에 있는 그림의 비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석의 뒷면을 찍은 사진을 살펴보니 맨 마지막 줄에 '崇禎紀元周甲後庚寅'라는 문구가 눈에 띄네요.
숭정은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의종의 연호로 1628~1644년이라고 하니 1644년에 60년을 더한 1704년 후 첫번째 경인년을 말하는데 1710년인가 봅니다.

<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릉>
묘역의 좌측에 서 있는 '개국공순충장렬흥무왕릉'이라고 되어 있는 비석입니다.
검색을 해보니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보면 흥덕왕(興德王) 때 "김유신을 흥무대왕(興武大王)으로 추봉하였는데 그 릉(陵)은 서산(西山) 모지사(毛只寺) 동향(東向)한 산봉에 있다."라고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비석은 이 때 세워진 것을 아닐테고 '신라태대각간 김유신묘(新羅太大角干 金庾信墓)'비 보다도 훨씬 후대에 세운 것 같습니다.
뒤면의 사진을 들여다 봐도 글씨가 너무 작아 잘 식별이 되지 않고요.
무덤에 12지신상을 새기는 것은 통일신라시대 성덕왕(702~737)의 릉 이후에 나타나는 양식이라고 하는데 이를 보면 지금의 김유신묘(金庾信墓)의 12지신상(支神像)은 흥덕왕대(興德王代) 흥무왕(興武王)으로 추존된 후에 왕릉(王陵)의 예로 묘(墓)를 조성하면서 12지신상(支神像)을 조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합니다.
호석에 있는 십이지신상을 담아봅니다.
무공이 낮은 데다가 쭈그리고 앉아서 사진을 잡다보니 많이 들쑥 날쑥하네요.
트리밍을 할 까 했지만 그대로 올려봅니다.
안내문에 표기한 것과 같이 머리는 동물이고 몸은 사람이며 무기를 들고 있음에도 복장은 평복입니다.

<쥐子>

<소丑>


<범寅>


<토끼卯>


<용辰>


<뱀巳>


<말午>


<양未>


<원숭이申>


<닭酉>


<개戌>


<돼지亥>

<숭무전>

김유신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숭무전(崇武殿)인데 아주 잘 가꾸어져 있습니다.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주인공인 무열왕이나 문무왕을 위한 사당은 없는데 일개 장군인 김유신의 사당만을 세우고 위패를 모신다는 것이 아무리 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혹시 박정희 대통령 때 의도적으로 이런 것들이 세워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고요.


<배롱나무>

김유신 장군의 묘역 한 쪽에는 배롱나무(또는 백일홍)가 분홍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어있었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