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 둘러보기

월송정(越松亭)-관동팔경의 제1경

동해안 도로를 따라 가다가 관동팔경 중에 제1경이라는 월송정(越松亭) 입구라는 표지판이 보여 들러봅니다.
먼저 안내판을 읽어봅니다.


<월송정>
월송정은 고려시대 이래로 수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았던 유람지로 유서가 깊은 정자라고 합니다.
고려시대에 이후로 퇴락한 것을 조선 연산군 때에 강원도 관찰사인 박원종이 중건하였고, 그 뒤로 1933년 이 고을 사람 황만영, 전자문 등이 다시 세웠으나 일제 말기에 이곳에 주둔한 일본군이 이를 철거하였다고 합니다.
그 후 1969년에 재일교포로 구성된 금강회의 후원으로 2층 콘큭리트 건물이 세워졌으나 본래의 모습과 너무 달라 해체하고, 1980년에 현재와 같이 다시 세웠답니다.



<월송정>
이 정자는 사선이라고 불린 신라시대 영랑永郞, 술랑述郞, 남석南石, 안상安詳 등 네 화랑이 유람했다는 설화가 남아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만그루의 소나무가 십리가 넘는 흰 모래와 어울려 절경을 이루었다고 하는데 서두의 “고려시대 이래”라고 짚었는데 요 위의 네 화랑 얘기가 읽는 눈을 좀 불편하게 합니다


<월송정>

계속 읽어봅니다.
월송越松이라는 이름은 사선이 달밤에 송림에서 놀았던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월국越國에서 솔씨를 가져다 심었기 때문이라는 향전鄕傳도 있다고 되어 있는데……
달月밤에서 월越송을 연상하는 것은 무언가 매끄럽지 못한 느낌이고 또한 소나무는 우리의 토종인데 베트남 쪽에 있었다는 월국越國에서 솔씨를 가져다 심었다는 것도 좀 그렇습니다.



<월송정 중건비>
월송정 옆에 중건비가 서 있어 읽어봅니다.
월송정 중건비
우리 겨레는 산수를 찾고 즐기고 자연을 사랗아는 전통을 끼치었다. 월송정은 관동팔경 중의 하나로서 신라 때 화랑들이 노닐던 곳이요 고려 이후 수많은 시인들이 와서 시를 남기고 간 문화의 유적지다 이 정자는 오래 전해 온 옛터에 중종 때 관찰사 박원종이 창건, 1933년에 고을 선비들이 중건, 해방후 재일교포 금강회에서 삼창, 다만 건축양식이 어울리지 아니해 새 설계 아래 도비 8천만원으로 1979년 12월 19일에 준공, 백상, 창송 좋은 경치에 조화되는 고전양식의 정자를 완성한 것이라 이 고장 산수자연을 찾는 이마다 즐거운 시간을 누리고 갈 것이다
1980년 5월 이은상 짓고 김충현 쓰다



<월송정의 풍경>
계단을 딛고 정자위로 올라봅니다.
정자의 누각에 올라서니 소나무 너머로 푸른 바다가 눈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시원하게 해주네요.
바로 소나무 너머로 보이는 경치가 일품이기 때문에 “월송越松”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이 아닌가 합니다.
풍광이 좋은 곳을 보면 친한 친구들 몇몇이 모여 조촐한 술자리를 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왠지 이곳은 술자리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책과 더불어 지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드는 곳입니다.
난간에 걸 터 앉아 솔밭 넘어 바다를 바라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안해 집니다.



<월송정 앞 솔밭과 바다 풍경>
바다에서 눈을 떼고 정자 내부를 둘러보니 왼쪽 계단 부근의 마루가 심하게 손상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은 울진에서 관할하는 곳일 텐데 손상이 더 심해지기 전에 보수를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월송정을 내려옵니다.

한발물러 세상보기-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