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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둘러보기

사적 제180호 진평왕릉(070501)-경주

경주 박물관에서 성덕대왕신종의 사진을 담고 진평왕릉을 찾아갑니다.
진평왕릉으로 가는 길을 몰라 박물관 안내원에게 물어 보았더니 보문관광단지로 가는 길에서 우측에 있다고 하면서 장황히(자세히?) 알려주는데 기본적인 지리감각이 없어 잘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보문관광단지로 가다가 마침 분황사 옆을 지나게 되어 주차를 하고는 분황사 매표원에게 물어보니 모른다고 합니다.

<진평왕릉 입구>
경주 같은 곳의 유적지 매표원 정도라면 유적지의 위치, 아니면 관광지도를 비치하여 물어보는 관광객들에게 알려는 주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보문관광단지로 향합니다.
그래도 교통표지에 나와있어 큰길에서 우회전하여 얼마를 가다보니 진평왕릉이 나옵니다.

<진평왕릉-입구 쪽>
길가의 큰 나무들 아래로 난 길을 따라 20~30m를 들어가니 진평왕릉이 눈에 들어옵니다.
왕릉의 입구에는 십여개의 돌들이 세로로 세워져 있고, 능의 주위 이쪽 저쪽에는 나이가 꽤 들은 고목들이 둘러 싸고 있습니다.
왕릉 옆에 서 있는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신라 26대 왕인 진평왕(재위579~632)의 능으로 봉분의 높이 7.6m, 지름 38m로 원형의 봉토분이며, 무덤 밑둘레에는 자연석으로 둘레돌을 둘렀으나 몇 개만 드러나 있고, 다른 왕릉과는 달리 아무런 시설없이 평야 가운데 위치한 것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이라는 얘기인가 봅니다.

<진평왕릉-서쪽>
연륜이 오래된 나무에 둘러 쌓여 있는 이 능은 시설물이 없는 평범한 릉이라 그런지 다른 유적지와는 달리 관람객이 아무도 없어 유홍준 교수가 문화유산답사기에 쓴 것과 같이 아주 호젓한 분위기를 나 혼자서 맛보는 호사를 누려봅니다.
릉을 따라 돌아가면서 서쪽 방향에서 카메라에 능을 담아봅니다.









<진평왕릉-남쪽>
남쪽 방향으로 와 보니 능의 앞에 상석과 사적비 등 몇 개의 석물이 자리를 하고 있어 능의 조용한 분위기에 변화를 줍니다.
진평왕에 대한 기록을 검색해봅니다.
<진흥왕의 장손자이다. 어머니는 만호부인(萬呼夫人)이고, 왕비는 마야부인(摩耶夫人)이다. 579년에 왕이 되어 632년에 승하할 때까지 54년 동안 왕으로 있었다.
신라 초대 임금인 혁거세 다음으로 재위기간이 길었으며 여러 차례에 걸친 고구려의 침공에 대항하는 한편, 584년에 건복(建福)이라고 개원하여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대외적으로 자주성을 천명하고 수나라와 수교하였으며 수나라가 망하자 당나라와 수교하였다.
국내적으로는 원광(圓光담육(曇育) 등 승려를 중국에 보내 수도하게 하는 등 불교진흥에 힘썼다.
특히, 경주 남산성(南山城)을 쌓았고 명활산성(明活山城)을 개축하는 등 수도 방위대책에 힘썼다.>

<진평왕릉 석물-혼유석 뒤에 돌의자가 이채롭다.>
능 앞에 있는 석물을 자세히 살펴봅니다.
이 석물들을 보니 일부는 최근에 다시 설치한 것이고 일부는 아주 오래된 티가 납니다.
그런데 능 앞에 있는 상석, 왕릉이니까 혼유석이라고도 부르기도 하는 상석의 뒤편에 돌로 만든 오래된 의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왕의 혼이 상석에 차려놓은 제사 음식을 편안히 앉아서 드시라고 의자를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여러 왕릉을 돌아보았지만 이 곳에만 있는 특별한 의자입니다.

<진평왕릉-동남쪽>
동남쪽으로 물러나서 능을 바라봅니다.
여기서 이렇게 보니 왕릉의 호젓한 분위기가 더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왕릉앞 고목>
왕릉앞에 서 있는 고목입니다.
그런데 약간 몸을 숙이고 있는 이 고목을 이렇게 보니 두손을 모으고 왕릉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특별한 장식도 없는 왕릉이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마음을 넉넉하게 해줍니다.

<꺼꾸로 달린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
왕릉을 한 바퀴 돌고는 차가 있는 왕릉 입구로 나섭니다.
입구로 나서다가 왕릉을 뒤돌아보니 입구에 붙어 있는 '쓰레기를 버리지 맙시다.'라는 팻말이 꺼꾸로 달려 있습니다.

kangjinee......^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