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재 둘러보기

국보 제 31호 첨성대-경주 (070128)

2007년 1월 28일, 첨성대를 둘러봅니다.

<국보 제 31호 첨성대-2006년 12월 3일>
위의 그림은 작년말, 그러니까 2006년 12월 3일에 박물관에 들렸다가 여기에 왔다가 담은 사진입니다.
첨성대의 안내문을 읽어봅니다.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만들어진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라고 합니다.
화강석을 가공하여 조성한 기단위에 27단의 석단을 원통형의 곡선으로 쌓아 올리고, 그 위에 장대석을 우물 정자형(井)으로 축조하여 저앙부에서 천문을 살피도록 시설되어 있다고요.
정남쪽의 삭단에는 아래로부터 제 13단과 제15단 사이에 네모난 출입구가 있어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되어있고, 이 출입구 아랫부분 양쪽에는 사다리를 걸쳐 오르내리도록 되어 있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규모는 지름이 5.17m, 높이가 9.4m이며 지대석의 한변의 길이는 5.35m로 신라시대의 석조물로 직선과 곡선이 잘어우러진 안정감 있는 건축물이랍니다.



<국보 제 31호 첨성대-남쪽>
오늘은 첨성대를 한바퀴 둘러보며 각 방향에서 사진을 담아봅니다.
정면에서 담은 사진입니다.
19단과 25단쯤 되는 곳의 벽돌이 양쪽으로 툭 튀여 나와 있는데 이 벽돌은 개구부를 중심으로 할 때 대칭을 깨고 있는데 어떤 자료를 보니 중간에 뚫려있는 개구부가 정남쪽에서 동쪽으로 19도가 돌아가 있다고 합니다.
이 툭 튀어나온 돌은 첨성대의 맨 위에 있는 우물정자 모양의 장대석의 모서리가 외부로 나와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국보 제 31호 첨성대-동남>
동남쪽 방향에서 보니 이 튀어나온 벽돌은 19단과 25단에 있으며 양쪽으로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 첨성대에 대한 기록은 삼국유사, 고려사, 세종실록, 신증동국여지승람, 증보문헌비고 등에 언급이 되어 있는데 그 기록과 현물이 일치한다고요.
문화유산답사기를 읽어봅니다.
첨성대가 있는 자리는 경주시 인왕동으로 신라시대로 말하자면 궁성이 있던 반월성과 계림의 바로 위쪽이며, 대릉원의 고분군과 석빙고 안압지와 이웃하고 있는 자리라고 합니다.
즉 서라벌의 주택가가 아니고 관공건물이 모여있던 곳으로 신라의 국립기상대나 천문대가 있던 자리로 추측되며, 이 들의 건물이 별도로 있었겠지만 다른 목조건물들과 같이 사라져 버리고 그 상징물이던 첨성대만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국보 제 31호 첨성대-동쪽>
동쪽방향에서 담아봅니다.
해가 서쪽 방향에 있어 사진이 많이 어둡게 나왔습니다.
그런데 이쪽에서 보면 첨성대가 약간 기운듯 하게 보이는데 다중촛점안경을 끼고 있어서 그런지?
첨성대의 전체적인 모습은 대()의 모습으로 제기(祭器)를 받치는 기대(器臺)를 모방하여 만든 것이라고 보는데 실제 신라의 토기에는 이 첨성대와 비슷한 형상의 기대를 갖고 있는 토기가 여러 개 있다고 합니다.
첨성대는 탑()이나 옥()이 또는 올라가 밟고 섰다는 대()가 아니고,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받침으로 보인다고 하는데, 옛날 사람들의 천원지방,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첨성대의 기단은 정사각형이고 몸체는 원으로 되어 있는 구조로 했을 것이라고 합니다.


<국보 제 31호 첨성대-북쪽>

북쪽 방향에서 본 첨성대입니다.
최근에는 이 첨성대의 내부 구조 등이 천문을 관측하기에는 불편한 구조라는 등의 이유로 천문대라는 것에 의문을 품고 있는 학자들도 많이 있고, 일부에서는 불교의 상징인 수미산의 모형이라는 등의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성래 교수의 한국사 특강에 따르면 첨성대의 몸체는 모두 27단이며, 맨 위의 정자석을 합치면 28단으로 기본별자리 28숙을 상징하고, 여기에 기단석을 합치면 29단으로 한달의 길이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또한 남쪽 중앙부의 네모난 창의 위로 12, 아래로 12단이니 이는 1년과 24절기를 상징하며, 여기에 사용된 돌이 약 362개로 1년의 날 수를 상징하고 있다고요.


<국보 제 31호 첨성대-서쪽>
서쪽에서 보는 첨성대입니다.
전 상운 교수의 한국과학기술사에 따르면 기단석은 동서남북 4방위에 맞추고 맨 위 정자석은 그 중앙을 갈라 8방위에 맞추었으며 창문은 정남 방향인데 이 창은 춘분과 추분, 태양이 남중(南中)할 때 광선이 첨성대 밑바닥까지 완전히 비치게 되어 있고, 하지와 동지에는 아랫부분에서 완전히 광선이 사라지므로 춘하추동의 분점(分点)과 지점(至点) 측정의 역할을 한다고 되어 있답니다.
맨 위에 인용한 자료에는 창문은 정남향이 아니고 19도 틀어져다고 했는데 이 설명과 좀 틀리고, 또한 어떤 자료엔가는 첨성대 창문 아래까지 흙으로 채워져 있다고 했던데 위에 설명한 춘분, 추분 때 밑바닥까지 햇볕이 비친다는 것과는 좀 맞지 않는 설명같습니다.


<국보 제 31호 첨성대-서남쪽>
서남쪽에서 바라본 첨성대 입니다.
첨성대의 안전점검에 대한 안내판이 있어 읽어봅니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1991년부터 첨성대에 대해 정기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하고 있답니다.
3D스캔을 통하여 전체적인 형상의 변형, 광파측거리를 통한 기울기 측정, 석조레이다를 이용한 적심상태의 측정 등을 통하여 변형여부에 대한 점검을 하고 있는데 현재까지는 안정된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첨성대 실측도>
남천우 교수라는 분이 제시한 첨성대의 실측도 인데 1척=29.7Cm로 하여 측정한 것이라는데 위쪽 정자석의 9척과 7.5척이 어떤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습니다.
kangjinee......^8^